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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K컬처의 원형, 삼척의 신앙 문화를 주목해야

유춘동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K-팝과 드라마, 영화에 이어 세계의 관심이 이제 우리의 전통 신앙인 ‘무속(巫俗)’과 ‘샤머니즘(Shamanism)’으로 옮겨갔다. K-컬처가 기술과 감성의 결합을 넘어, 정신적 상징의 차원으로 확장되면서, 한국의 전통 신앙과 굿이 새로운 문화적 영감의 원천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보여준 것이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이다.

현재 국내에서 ‘무속과 샤머니즘’의 원형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이 삼척이다. 삼척의 바다와 산, 내륙 곳곳에서는 풍어제, 단오제, 산신제 등 다채로운 제의(祭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바다의 신에게 풍요를 비는 굿, 산의 정령에게 올리는 제사, 마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미로단오제 등은 공동체의 기억과 예술성이 결합된 샤머니즘의 현장이다.

삼척은 단순한 전통의 보존지가 아니라, 삶과 예술, 신앙이 공존하는 ‘살아 있는 한국 신앙의 원형 도시’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삼척의 귀중한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제의의 중심이었던 무속인과 참여자들이 고령화되고, 일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후계 세대의 부재로 전승의 맥이 끊길 위험이 커지는 현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 기록과 복원, 그리고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삼척시의 노력에만 맡겨서는 한계가 있다. 강원도와 국가 차원에서 무속 음악, 굿, 춤의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국가무형유산 지정 및 전승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무속은 미신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공동체를 잇는 우리 정신문화의 원형이다. 이러한 인식을 널리 확산시키는 일은 강원도의 문화 정체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 창조의 기반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를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의 첨단이 아니라 상상력의 깊이에 달려 있다. 진정한 창의성은 전통의 뿌리에서 자라나며, 삼척의 신앙 문화야말로 한국인의 상상력과 예술성이 응축된 원천이다. 특히 무속은 인간의 두려움과 소망, 공동체의 연대와 위로를 상징적으로 표현해온 문화적 언어다. K-컬처가 세계에서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지려면, 그 표면 아래 흐르는 이러한 정신적 깊이와 서사성을 되살려야 한다. 삼척 곳곳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속과 샤머니즘은 바로 그 상징적 가능성을 품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삼척의 신앙 문화를 지키고 세계로 확장할 절호의 시기다. 이는 단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굿의 북소리와 춤, 신화와 노래 속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인간과 자연의 화해의 언어가 담겨 있다. 이를 단순한 전통의 잔재가 아닌 미래 자산으로 인식하는 관점 전환이 절실하다.

삼척의 무속을 포함한 신앙 문화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문화적 열쇠이다. 이제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그 가치를 보호하고 계승해야 한다. 삼척의 무당들, 그들의 굿소리와 신춤이 세계의 무대에서 울려 퍼질 때, 우리는 비로소 K-컬처의 가장 오래된 원형이 새로운 창조의 언어로 되살아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 그 길을 열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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