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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호등] 반복되는 지각 획정…이번에는?

이현정 정치부 기자

“내 체급이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데 일단 링부터 올라가야 해요. 막상 경기가 시작해서 룰이 바뀌기도 합니다.”

지방선거를 200일 남짓 남겨두고 강원 광역의원 입지자에게서 나오는 볼멘소리. 선거철마다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선거구 획정'에 대한 이야기다.

올해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은 내년 6·3 지방선거 180일 전인 다음달 3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설치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광역·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은 국회 정개특위에서 지방의원 총 정수를 결정한 이후, 이 내용을 기반으로 본격 논의될 수 있지만 국회 단계부터 막혀 있는 셈이다.

지역구 조정의 가능성이 있는 지방의원 입지자들은 혼란한 마음을 호소하고 있다. 자신이 출마할 곳이라고 믿고 공을 들여온 지역이 막상 자신의 지역구가 아니게 되고, 반대로 그동안 정성을 들이지 못했던 곳이 새로운 지역구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예비후보자 등록 이후 선거구가 바뀌어 출마를 희망하는 선거구를 다시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는 사례도 있었다.

선거구 획정 지연의 혼란과 피해는 입지자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유권자 역시 후보자에 대한 자질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지고,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후보 발굴이 어려워진다. 이는 결국 지역 정치 전반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직전 지방선거가 있었던 2022년에도 강원 지역은 큰 혼란을 겪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선거일을 불과 47일 앞두고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3∼5인 선거구) 시범 도입과 지선에 적용할 광역의원 정수 등인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당시 정선군은 광역의원 지역구 의석이 1석으로 줄어들었다. 지역 사회에서는 "서울시의원은 100명이 넘는데 서울시 면적 2배가 넘는 정선의 광역 의원은 단 1명뿐"이라는 자조가 나왔다. 평창군에서는 당시 생활권이 다른 기형적 선거구가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회가 광역의원 선거구를 획정한 후, 도의회가 기초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는 구조여서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 시일은 더 소요됐다. 앞서 2010년 지선은 선거일 전 83일, 2014년에는 112일 전, 2018년에는 선거일 97일 전에서야 획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기에 3인~5인 중대선거구 법제화 등 지방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기 위한 목소리도 야3당을 중심으로 나온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사회민주당 강원특별자치도당이 시도당 차원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지난 8월 제도 개혁을 함께 촉구한 바 있다. 현행 지역구 시·도의원 선거에서 1인, 시·군의원 선거에서 2~4인을 선출하면서 다수 정당 중심의 당선 구조를 강화한다는 문제 지적이 골자였다. 야3당과 기본소득당도 최근 국회 토론회를 열고 관련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지선 입지자들의 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시점에선 더 속도감 있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때'가 지나면 의미가 퇴색된다. 제대로된 지역 일꾼을 뽑기 위해선 '선거구 획정'이 먼저다. 정치권 책임 있는, 속도감 있는 논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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