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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호등]위기의 서민경제

홍예정 경제부 차장

“20년간 운영하던 가게를 접으려니 아쉽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보다 경기가 더 안 좋으니까요…” 취재 도중 만난 자영업자의 한탄이다. 동네에서 20년 넘게 세탁소를 운영해오던 그는 결국 폐업을 선택했다.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세탁비를 인상하고, 영업일 수도 줄이는 등 특단의 대책에도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역 서민 경제가 위태롭다. 정부가 소비쿠폰 지급을 비롯해 각종 지원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침체된 지역경제는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계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폐업 공제금 액수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개인회생신청은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5년 이후로 가장 많았고, 가게 문을 닫은 소상공인에게 지급되는 폐업 공제금은 역대 상반기 최고 수준에 달했다.

올해 1~9월 법원에 접수된 도내 개인회생신청은 지난해보다 16.6% 늘어난 3,130건이었다. 개인회생신청은 2022년부터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는 역대 최대치인 3,547건으로 집계된 바 있다. 상권이 무너지면서 노란우산 폐업공제금은 올 상반기에만 253억원을 기록하면서 1년 새 22억원 늘었다. 생계가 어려워진 서민들은 불법 채권추심에 내몰리고 있어 대응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가계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지갑도 닫혔다. 강원지방통계지청에 따르면 도내 소매판매가는 8개월 연속으로 감소했다. 지난 9월 도내 대형소매 판매액지수는 지난해보다 14.8% 줄었다. 화장품, 의복, 오락·취미·경기용품, 신발·가방, 음식료품, 가전제품, 기타상품 등의 판매가 모두 지난해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가 얼어붙으면서 도내 소상공인 체감·전망 경기 모두 전국 최하위로 떨어졌다 지난달 도내 소상공인 체감경기지수(BSI)는 72.0으로 17개 시·도 중에서 가장 낮았고, 전망경기지수는 83.5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84선을 넘기지 못했다.

이와 같은 소상공인 경기 침체는 상가 공실로 이어지고 있다. 올 3분기 기준 태백중앙시장 공실률은 46.4%로 50%에 가까운 공실률을 보였다. 태백중앙시장 점포 2곳 중 1곳이 공실인 셈이다. 원주 중앙·일산(33.1%) 상권 역시 공실률 30%를 넘겼다.

정부는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빚탕감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등 서민경제 회복 정책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시적 할인 혜택은 매출이 빠르게 바닥을 치는 산업군에 산소호흡기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증상 완화제의 성격에 머문다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시적 대응책’이 아니라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장기적 전략이다.

주거비, 교통비, 교육비 등 지역별로 조정 가능한 공공서비스의 합리화를 통해 가계의 고정지출을 줄일 수 있는 대책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변동성이 큰 에너지·교통·주거 분야에서 지역 맞춤형 감축 정책을 마련하면 서민 가계의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여기에 지역 특화 산업, 소상공인 디지털 전환, 관광·문화 기반 확충과 같 지역 경제의 자생력을 키우는 투자가 필요하다. 소비는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쓸 여력과 이유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서민 가계의 회복은 경제 성장의 하위 과제가 아닌 상위 전략이다. 지역 주민의 소득이 안정돼 생활비 부담이 줄어들고, 지역 일자리와 상권이 회복될 때 비로소 국가 경제는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다. 지역 서민 가계의 숨통을 틔우는 일, 그것이 곧 한국 경제의 미래를 되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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