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무실재아카데미 5기 수료생들과 안동과 봉화로 졸업여행을 겸한 문화답사를 다녀왔다. 봉화의 만산고택을 거쳐 농암종택에서 하룻밤을 자고 밀로 만든 소주인 진맥소주를 만들어 유명해진 안동 맹개마을까지 둘러봤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안동을 가면 안동소주를 비롯해 그 지역의 유명한 전통주를 맛볼 기회가 많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농암종택의 가양주인 일엽편주를 탁주와 청주, 소주 로 각각 맛봤다. 청주의 그 청량한 맛과 38도 소주의 은은한 향은 놀라웠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전통주를 되살려온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1934년 가양주 개념의 자가용주 제조면허를 폐지할 당시 우리나라에는 자가용주 제조면허사업자가 37만명이 넘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이 된 후에도 식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쌀로는 술을 빚지 못했다. 1995년 가양주 제조가 허용됐지만 이미 이 땅의 많은 가양주들이 죽다시피 한 뒤였다. ▼그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가양주가 부활한 곳이 안동이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전통이 남아 있어 종택마다 특별한 가양주 제조법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월영교 일대에서 열린 ‘안동 전통주 박람회’에는 농암종택, 학봉종택, 노송정 등 경북 11개 종가의 가양주와 안동소주, 옹천막걸리, 안동맥주 등 총 27개 기업의 술이 출품돼 전국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안동소주는 고려 충렬왕 시절 원나라 사신을 맞기 위해 탄생했다는 설이 있고, 태사주는 고려 태조가 전쟁에서 승리한 뒤 주모가 내놓은 술이라 전해진다. 각 술마다 유래와 이름, 사연이 어우러진다. 이처럼 ‘이야기’는 전통주의 품격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강릉은 전통문화의 도시라 자부하지만, 그 정신을 담은 지역 가양주 하나 없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고유의 술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다. ‘문화강릉’을 외친다면 이제 우리 술, 우리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