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90만
언중언

[언중언]법정모욕

일러스트=조남원 기자

1980년대 중반 철부지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다. 대학신문사 기자로, 지방법원에서 구속된 선배들의 재판을 취재했다. 법정에서 손을 들고 재판장에게 신분(?)을 밝힌 뒤 “왜 기자석을 마련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 잠시 빙그레 웃던 재판장은 교도관들에게 “자리를 좀 마련해 주라”고 했다. 법정은 방청 온 학생들의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정에 기자석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웠다. ‘법정모욕’은 아니지만 ‘법정소란’이 될 수도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사건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들이 법정질서를 위반했다며 감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변호인들이 인적사항 질문에 ‘묵비’하는 등의 상황으로 감치 집행이 이뤄지지 못했다. 두 변호사는 석방 뒤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진관 부장판사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25일 이들을 법정모욕, 명예훼손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법정모욕’은 단순히 판사나 검사를 향한 개인적인 모욕을 넘어선다. 그것은 사법 시스템 전체에 대한 정면 도전이며, 법이 상징하는 질서와 권위에 대한 부정이다. 최근 일부 사건에서 피고인이나 방청객이 재판부를 향해 폭언을 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행태가 보도될 때마다,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듯한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사법부의 권위는 물리적인 강제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자발적인 신뢰와 존중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법정모욕에 대한 사법부의 엄정한 대응은 불가피하다. 이는 판사 개인의 감정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국민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법 절차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국민들 역시 법의 이름으로 내려진 판단을 존중하고, 법정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 곧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법 신뢰의 마지막 보루인 법정을 향한 최소한의 존중이야말로 성숙한 민주 시민의 책무이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