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의료의 질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오죽하면 생후 12개월 A양의 아버지가 “강원도 살아서 미안하다”고 털어놓던 당시의 목소리를 떠올릴 때면 지역의료 현실이 얼마나 열악하고 절박한지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 9월 1년 7개월간 이어진 의정갈등이 봉합돼 강원지역도 50% 이상 전공의들이 복귀했다. 의료 공백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가 싶지만 지역의료, 필수의료의 앞날은 어둡기만하다. 특히 강원 남부권과 영동지역에는 아이들이 아파서 응급실을 갈 때마다 부모들은 마음 졸이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최우선 보건의료 과제 중 하나로 응급의료체계 개편,지역 간 필수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 나섰다. 최근 강원특별자치도는 영동권 소아청소년 응급의료체계 강화 위한 업무 협약 체결하고 소아청소년과 전담의 추가 인력 채용이 이뤄지며 소아응급진료가 재개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역의료 공백과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지역의사법·응급의료법·비대면 진료 법적근거 마련을 위한 의료법·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법 등도 통과시켰다.
지난해 의정갈등이 촉발돼 지역의료 필수의료 공백이 더 두드러졌지만 의료계에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필수의료 부족 사태에 큰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정부정책에 오히려 지역 의사회 간 단합된 목소리로 거센 반발을 예고하고 있다.
지역 의사들은 업무 스트레스와 함께 소송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의료현장에 몸담고 있다. 지역소멸 지역에 개업은 사실상 적자를 감수해야 하고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진료과에 내려와 무조건 일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인력 부족이란 본질은 공급 부족과 함께 지역 내 정착할 기반이 없는 구조적 문제가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의료분야만큼 제2의정갈등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비상계엄 1년이 지난 시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판결문에 담긴 갈등 조정의 메시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정합의로 나아가려면 관용과 자제 속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 의사 대 국민이란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지역의료 살리기라는 과제에 정부·지역민·의료계 간 사회적 대화가 문제 해결에 출발점이다.
10여년 전 편의점에서도 상비약을 구매할 수도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약사 단체가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상비약을 편의점에 도입하는 과정 속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 약사, 간호사, 환자 단체 간 TF를 만들고 계속 대화를 이어갔고 결국 실마리를 찾은 좋은 선례가 있다.
지역의료 붕괴가 곧 지역 소멸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청년층 유출·고령화, 일자리 부족, 수도권과 지방 인프라 격차에 의한 수도권 집중 현상 등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결국 정부·의료계·지역주민이 ‘누가 옳으냐’에서 ‘어떻게 지역 안전망을 함께 지킬 것인가’에 본질을 둘 때다. 지역의료 회복의 출발점은 법에서 서로를 향한 관용과 신뢰 속 끊임 없는 대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