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 죽겠다”고 하면서 살아있는 기적
12월의 끝자락이다. 해마다 맞는 겨울이고 매번 돌아오는 연말이지만, 올 한 해는 유난히 시리고도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2025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시간의 강을 건너오며, 우리는 참으로 많은 파도를 만났다. 때로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격랑이었고, 때로는 바닥조차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소용돌이였다. 이제 그 거칠었던 물살을 뒤로하고 자신과 우리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건네야 할 시간이다. 되돌아보면 2025년은 우리에게 단 한 순간도 평탄한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연초부터 이어진 경제의 찬바람은 온기를 잃은 채 서민들의 장바구니를 무겁게 짓눌렀다. 꺾일 줄 모르는 고물가와 고금리의 여파는 평범한 이웃들의 소박한 꿈을 위협했고, 더욱 가팔라진 소득 양극화와 세대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은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성장의 수치는 때로 화려했을지 모르나, 그 그늘 아래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했던 개인들의 고독한 투쟁은 그 어느 해보다 치열했다.
정치적 격변과 극한의 갈등
디지털 문명의 가속화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었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곳곳에서 터져 나온 보안 사고들과 인공지능의 가면을 쓴 딥페이크 범죄는 인간관계의 기본인 ‘신뢰’를 시험대에 올렸다. 보이지 않는 기술의 위협 속에서 우리는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기 위해 피로감을 느껴야 했다. 무엇보다 정치적 격변과 극한의 갈등은 때로 우리를 지치게 하고, 서로의 맞잡은 손을 놓게 만들 만큼 위태로운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뉴스를 켤 때마다 쏟아지는 가슴 아픈 사건 사고들은 마치 내 일인 양 우리의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게 했고, 공정이라는 가치가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깊은 회의감에 젖기도 했다.
그러나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다시 복기해 본 2025년은 절망의 기록만은 아니었다. 그 어두운 밤을 밝힌 등불은 저 멀리 있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바로 곁에 있는 평범한 우리들이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터로 향하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다. “힘들어 죽겠다, 주겠다”고 하면서도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땀 흘리는 부모의 뒷모습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도서관 불을 밝히는 청년들의 눈빛에서 우리는 희망의 근거를 찾았다. 우리 이웃들은 아픔에 기꺼이 마음 한 자락을 내어줄 줄 알았다. 고물가 속에서도 전통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온기를 나누고, 사회적 갈등 속에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그것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지탱해 온 위대한 ‘저력’이자 뿌리 깊은 생명력이었다.
국난 극복의 위대한 유전자
우리 국민은 참으로 강인하다. 역사 속에서 숱한 국난을 이겨낼 때마다 보여주었던 그 끈질긴 생존의 유전자는 2025년의 크고 작은 풍파 속에서도 여지없이 빛을 발했다. 누군가 쓰러지면 곁에서 부축해 일으키고, 누군가 부족하면 슬며시 자신의 것을 채워주었다. 공동의 선(善)을 향해 함께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경주에서 열린 APEC을 통해 한국의 문화적 역량과 경제적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복잡한 국제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만의 단단함을 증명해낸 것 또한 지도자 몇몇의 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며 공든 탑을 쌓아 올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땀방울이 모여 이룬 결실이었다.
지금 우리들의 손바닥에 밴 굳은살과 마음 한구석에 남은 생채기는 결코 부끄러운 흉터가 아니다. 그것은 올 한 해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삶을 뜨겁게 사랑했다는 훈장이다. 이제 일 년 내내 짊어지고 왔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자. 거창한 반성이나 화려한 계획보다는, 고생 많았다고 나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이 먼저다. 다가오는 2026년 새해에는 갈등의 고함보다는 화합의 웃음소리가, 절망의 탄식보다는 희망의 노랫소리가 우리 사회 곳곳의 빈틈을 채우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있기에 2026년은 다시 꿈꿀 수 있다. 한 해를 아름답게 매듭짓는 이 소중한 시간, 부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따스한 위로의 촛불 하나가 켜지길 기원한다. 당신이 있어 올 한 해 참으로 든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