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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일반

[피플&피플]배추밭에서 시작된 꿈… 스노보드 이상호, 설원을 날다

아버지 발령 따라 사북으로 이주하며 보드와 첫 인연
배추밭에 만든 썰매장서 놀이처럼 시작한 스노보드
눈 좋아하던 소년, 겨울마다 설원 누비며 기량 키워
중학생 시절 큰 부상에도 “눈 오면 가자”며 일어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국내 최초 설상 메달 따내
2022 베이징에선 0.01초 차이로 아쉽게 4강 실패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스노보드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정선 출신 '배추보이' 이상호. 사진=네이버 제공

“안 하기로 마음을 굳혔는데요. 겨울이 오니까 애가 그러더라고요. ‘아빠, 눈 오면 가자.’”

정선 출신 이상호는 눈이 내리면 가장 먼저 집 밖으로 뛰쳐나가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 아버지 이차원씨의 고한읍사무소 발령으로 가족이 사북읍에 자리를 잡으면서 그의 ‘눈과의 인연’도 시작됐다.

마침 사북에는 여름이면 배추가 자라고, 겨울이면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하던 밭이 있었다. 수확을 마친 뒤 계절이 바뀌면 그곳은 자연스레 썰매장이 됐다. 정선군스키협회가 겨울철에만 운영하던 작은 눈썰매장에 방문한 뒤부터 아이는 눈만 오면 썰매부터 찾았고, 넘어져도 다시 올라섰다.

이차원씨는 아들이 “보드 탈 때가 제일 행복해 보였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스노보드는 훈련이 아니라 놀이였고, 하루의 전부가 됐다.

결국 부모의 선택은 하나였다. 이차원씨는 “저렇게 좋아하는데 힘들어도 한번 해보자 싶었다”고 회상했다. 평범했던 이사가 훗날 대한민국 동계스포츠 역사를 바꿀 출발점이 된 셈이다.

◇(사진 왼쪽부터)이상호와 어머니 김연희, 동생 이상준, 아버지 이차원씨. 사진=강원일보 DB

여름이면 고랭지 배추밭, 겨울이면 슬로프로 바뀌는 환경 속에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눈과 친해졌다. ‘배추보이’라는 별명은 그렇게 생겼다. 처음엔 웃고 넘겼던 이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상호의 출신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고향의 자랑으로 남은 이름이었다.

장비 사정은 늘 빠듯했다. 공무원이었던 그의 월급으로 감당하긴 벅찼다. 이상호는 시즌이 다 지난 할인되고 또 할인된 장비를 사서 탈 수 밖에 없었다. 최신 장비는 늘 남의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장비를 탓하지 않았다. 그 장비로도 우승을 차지하며 이변의 중심에 섰다.

국내 설상 종목의 구조적 한계는 늘 따라다녔다. 겨울은 길어야 두 달 남짓. 스키장 수, 눈의 질은 유럽·북미와 비교하면 열악했다. 이차원씨는 “우리는 야간까지 탈 수 있으니까 하루에 세 번을 타자”며 생각을 바꿨다. 아침·오후·야간으로 시간을 쪼개 훈련했다. 그렇게 두 달의 겨울을 여섯 달처럼 썼다. 눈이 없는 계절엔 유도로 체력을 길렀다. 여름엔 도복을 입고 매트 위를 굴렀고 겨울엔 다시 보드에 올랐다. 이미지 트레이닝과 체력 관리는 이상호의 일상이 됐다.

◇2017년 이상호의 세계선수권 출전 모습. 사진=강원일보 DB

해외 전지훈련도 병행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비용 부담은 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차원씨는 아이보다 부모가 먼저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주변에서는 “보드가 되겠느냐”, “나중에 그걸로 먹고 살 수 있겠느냐”는 말을 쉽게 던졌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는 “나중 문제다. 지금은 좋아하는 걸 시켜주는 게 맞다”고 단순하게 답했다.

가장 큰 고비는 중학생 시절 찾아왔다. 국내 선수권대회 도중 피니시 구간에서 크게 다쳐 머리를 부딪혔고, 한동안 기억을 잃었다.

가족 모두가 말을 아꼈다. ‘그만하자’는 말도, ‘다시 해보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겨울이 오자 아이가 먼저 입을 열고 “아빠, 눈 오면 가자”고 했다. 이차원씨는 “그 말 한마디에 다시 시작하게 됐다”며 그 순간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평창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경기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대한민국 이상호가 배추꽃다발을 들고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강원일보 DB

이후 성장은 차분했다.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가능성을 확인했고, 월드컵 출전권을 스스로 따냈다. 유로피언컵 한 시즌 종합우승까지 이어지며 국제무대에서도 경쟁력을 증명했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이어졌다. 배추밭에서 시작한 선수가 한국 설상 종목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이변이라고 대서특필했지만, 그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봐왔던 이차원씨는 “갑자기 된 게 아니다”라며 “하나씩 목표를 깨며 올라온 결과였다”고 했다. 평창의 메달은 기적이 아니라 과정의 결과였다. 4년 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0.01초 차로 5위를 기록했다. 외부의 평가는 엇갈렸지만 이상호와 이차원씨 “설상 종목은 하늘이 메달을 주는 종목이다. 랭킹 1위부터 16위까지 누가 딸지 모른다”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신뢰가 컸다.

또 다시 4년이 흘렀다. 이제 ‘배추보이’는 담담히 밀라노로 향한다. 올림픽은 누구나 메달을 딸 수 있는 무대다. 특히 설상 종목 특성상 랭킹이나 시즌 성적만으로 결과를 단정할 수 없다. 그는 “랭킹 1위부터 16위까지는 누가 메달을 딸지 모른다”며 “올림픽 메달은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결국 하늘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추보이’ 정선 출신 이상호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준준결승에서 0.01초 차이로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자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강원일보 DB

그렇다고 각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목표를 묻자 그는 “당연히 금메달 아니에요?”라며 단호하게 답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3위를 차지한 이상호의 실력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차원씨는 “지금까지 해온 걸 믿고 그 무대에 섰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이상호는 올림픽을 여러 번 치러본 선수다. 그 무대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는 그는 아버지에게 “결과를 미리 그리기보다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경쟁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전했다.

다만 가장 강조한 말은 따로 있었다. “여기까지 온 건 혼자 힘이 아닙니다.” 가족, 지도자, 협회, 대표팀 등 묵묵히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올림픽은 그분들께 결과로 보답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선수 최초로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시즌 종합 우승의 쾌거를 이룬 뒤 기뻐하고 있는 이상호의 모습. 사진=대한스키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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