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시면 2호기는 출력이 ‘0’입니다.”
최근 찾은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발전소 관계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모니터에 표시된 발전기 출력 현황을 가리켰다. 이곳에는 각각 1,040MWh 규모의 발전기 2기가 설치돼 있지만, 2호기는 가동이 중단된 상태였고 1호기 역시 600MWh 안팎만 생산하고 있었다.
상황은 강릉만의 문제가 아니다. 2,100MWh의 설비용량을 갖춘 삼척 블루파워 발전소는 현재 500~600MWh 수준에 그치고 있고, 1,200MWh 규모의 GS동해전력 역시 300~400MWh 정도만 생산 중이다.
동해안–신가평 HVDC(초고압직류송전) 건설 사업이 지연되면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송전망 병목 현상으로 동해안 발전소들의 평균 가동률은 20~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발전소들은 경영난을 넘어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수조원 투자했지만 손실만 누적=각 발전소 건설에 투입된 사업비만 해도 강릉 안인화력 5조6,000억원, 삼척 블루파워 4조9,000억원, GS동해전력 2조1,000억원 등 모두 수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낮은 가동률 탓에 투자금 회수는커녕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미 각 발전소의 총괄원가 미수금은 수천억원 규모로 쌓였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강릉 안인화력의 경우 올해부터 대출 원금 상환이 시작되면서 현금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될 전망이다. 설령 송전선로가 조속히 완공되더라도, 누적된 미수금을 회수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당분간 자금 압박은 불가피하다.
한 발전소 관계자는 “송전선이 내년에 완공된다고 해도 그때까지 버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이제는 단순한 경영난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토로했다.
■가동률 저하, 지역경제 직격탄=발전소 가동률 저하는 지역경제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지방세 수입만 보더라도 2024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약 3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전량에 따라 산정되는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사업 예산도 크게 줄었다. 2025년 19억1,600만원이던 지원사업 예산은 올해 5억9,300만원으로 급감했다.
강릉에서는 매년 수백 명의 대학생에게 지급되던 장학금 지원사업이 올해 중단됐다. 강릉에코파워가 자체적으로 추진해오던 지역협력사업도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추세다. 발전소 및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1,000여 명의 일자리 역시 위협받고 있다. 만약 발전소 가동이 사실상 중단될 경우 지역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고동주 강동면 이장협의회장은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주민들이 감내한 불편이 적지 않았는데, 막상 완공하고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다”며 “발전소 사정을 알기에 주민들도 항의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동해안 발전소 위기는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년간 누적된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이라는 게 현장의 공통된 인식이다. 일부 협력업체에서는 임금 체불이 발생하거나 매출 감소로 존폐 위기에 몰리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 차원의 뚜렷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AI 산업과 데이터센터 확산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대에 이미 구축된 동해안 발전소의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해안 발전소를 활용하면 국민들에게 보다 저렴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동률이 낮아 안타깝다”며 “송전망 건설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유치 등 자구책도 거론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의 에너지 정책에서 동해안이 사실상 소외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발전소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나 연구개발(R&D) 시설 유치를 위한 특별법이나 특구 지정이 이뤄지고, 이들과 직접 전력을 거래할 수 있는 PPA(직접전력구매) 제도까지 마련된다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며 “정부의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