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놓은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구상은 거창한 청사진과 화려한 수사와 달리, 또다시 수도권과 거점 대도시 중심의 성장 전략을 답습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름은 새롭지만 내용은 낡았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존의 성장 패러다임을 강화하는 구조 속에서 강원도는 여전히 변방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산간지역이라는 이유로, 군사·환경·산림 규제의 굴레 속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지역의 현실은 세련된 정책 용어 속에 가려져 있다. 균형발전이라면 모든 축이 고르게 서야 한다. 그러나 5극 3특은 또 다른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틀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강원도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각종 개발 제한을 감내해왔고, 수도권 2,500만 시민의 식수를 책임진다는 이유로 중첩 규제를 받아들여야 했다. 산림과 환경 보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자율권은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다. 그 결과는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약화, 청년 유출이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인구 3%라는 숫자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도 된다는 면허가 될 수는 없다. 균형발전은 규모의 논리가 아니라 형평의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숫자가 작다고 권리와 기회까지 작아지는 것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한 강원특별법 정부안은 도민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진정한 권한 이양과 실질적 규제 완화, 자주적 재정 운용권이 빠진 채 선언적 문구만 나열된 법안이라면 이는 특별법이 아니라 또 하나의 관리·통제 법안에 불과하다. 재정과 입법 권한을 중앙이 쥔 채 일부 특례만 부여하는 방식으로는 강원도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지역이 스스로 미래산업을 설계하고, 투자 방향을 결정하며, 기업 유치와 인재 양성 정책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름만 ‘특별’인 법으로는 강원도의 자립과 도약을 기대할 수 없다. 정부안이 미흡하다면 과감히 보완하고, 강원도 요청안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김진태 지사와 김시성 의장이 삭발까지 감행하며 호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삭발은 단순한 정치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절박함의 표현이다. 그러나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 중대한 사안이 정략적 이해관계 속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안은 국회 문턱에서 장기간 표류하고, 여야는 책임 공방만 반복한다. 삭발과 단식, 기자회견이 이어지지만 정작 본질적 논의는 뒤로 밀린다. 강원도의 미래가 정쟁의 카드로 활용되는 순간, 도민의 삶은 또 한 번 뒷전으로 밀려난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우리는 다시 되새겨야 한다.
강원도는 특혜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그동안 감내해온 희생에 상응하는 제도적 보완과 실질적 자치권을 요구할 뿐이다. 5극 3특이 진정한 국가균형발전 전략이라면 특정 지역을 성장축으로 삼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불리함을 해소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초당적 협의체를 구성해 정치적 이해를 넘어선 합의를 도출하고, 실질적 재정 분권과 규제 혁파를 담보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재설계해야 한다.
강원도민의 눈물은 결코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며, 아이들과 청년 세대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더 이상 상징적 구호와 일회성 이벤트로는 도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제는 구체적 수치와 제도, 예산과 권한으로 답해야 한다. 강원도는 더 이상 주변이 아니라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당당한 한 축이 되어야 한다. 정쟁을 넘어선 책임 있는 결단, 그것이 지금 정부와 국회가 보여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