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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의 바다편지] 경포, 그리고 정주영과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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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 시인.

강릉 경포 바다가 ‘국민 바다’가 된 것은 단순히 풍경이 아름다워서만은 아닙니다. 풍경으로 따지면 동해안에 경포와 견줄만한 바다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포가 국민 바다가 된 것은, 강릉이 품고 있는 오랜 역사와 깊은 문화의 힘 때문입니다.

강릉은 경주가 수도였던 신라 때부터 ‘로망의 도시’였습니다. 신라 때는 화랑들이,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는 선비들과 스님들이 로망을 쫓아 강릉을 찾았습니다. 경포대, 한송정, 오죽헌, 선교장, 굴산사 등과 경포 호수를 빙 둘렀던 누정들은 이러한 역사와 문화가 빚어낸 꽃밭이었습니다. 이 로망이 현대에 와서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경포 해변이 오늘날의 외양을 갖추게 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중후반만 해도 마땅한 술집이나 커피숍을 찾지 못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곤 했습니다. 경포 일대가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릉의 주 경기장들이 경포호수 인근에 지어지면서 경포 일대의 교통, 숙박 인프라가 확 달라졌습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경포는 1970년대에 천지개벽할 변모를 할 뻔했습니다. 그 변모의 키는 놀랍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쥐고 있었습니다. 그 출발은 오죽헌 정화사업이었습니다. 율곡 이이와 충무공 이순신에 대해 각별한 존경심을 갖고 있던 박 대통령은, 아산 현충사 정화가 끝나자 뒤이어 강릉 오죽헌 정화사업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직접 조감도를 그려가며 건물들을 배치했고, 친필로 지시사항을 하달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한 『오죽헌 정화지』 (1976)는 이러한 박 대통령의 지극정성을 잘 보여줍니다. 당시 오죽헌 정화사업의 공사 전반을 맡은 회사가 바로 현대건설이었습니다. 이때 두 사람은 오죽헌뿐 만이 아니라 경포 일대의 개발을 두고도 의기투합했습니다.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정 회장은 고향과 가까운 강릉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경포 해변에 있던 호텔을 인수해 ‘호텔현대경포대’(현 씨마크호텔)로 새롭게 개관한 뒤 수시로 찾았고, 훗날 ‘강릉아산병원’을 지어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 지역민의 의료 갈증을 해소해 주었습니다. 호텔 바로 앞 해변에서 현대그룹 신입사원들과 소탈하게 어울리던 정 회장의 사진도 남아있습니다.

지난 2005년에 출간된 퇴임 공무원들의 회고집에 실린 한 글에 따르면, 당시 박 대통령과 정 회장은 경포 호텔의 전용실에서 자주 만났는데 이때 경포 개발 계획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핵심은, 강문과 초당 지역을 포함한 경포 일대를 세계적인 해양휴양명소로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청와대 직속으로 경포개발기획단을 설치해 사업을 추진하고, 강릉비행장에서 경포에 이르는 직선도로를 개설하여 접근망을 확보하는 방안까지 수립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쓴 퇴직 공무원은, 강릉시가 1979년 마침내 예산 4억 원을 확보하여 도로 개설 사업부터 착수하였는데 그해 10.26 사태로 박 대통령이 서거하였다며 “강릉은 이 사태가 아니었으면 어떤 모양이든 간에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통탄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경인, 경부, 호남고속도로에 이어 1975년 영동고속도로를 개통하면서 시선을 강원도로 돌렸습니다. 강릉과 동해를 각각 관광, 물류의 국제도시로 만들어 강원도 전체의 발전을 견인하려 했습니다. 강원 사랑이 끔찍했던 정 회장은 박 대통령의 시선이 강원도로 옮겨진 점이 무척이나 반가웠을 것입니다. 요즘 경포 일대의 여러 난개발과 계획들을 보면서, 차라리 50여 년 전 이 두 분이 꿈꾸었던 원대한 구상이 실현되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볼 때가 많습니다. 두 분이 공유했던 기획력과 추진력, 그리고 강릉 사랑이라면 근래의 지질한 난개발보다는 뭔가 ‘큰 작품’ 하나가 나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청춘과 함께한, 아름다운 경포 바다와 경포 호수를 떠올리면 가슴이 짠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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