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14대 왕 선조(1552~1608)하면 임진왜란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조선 건국 200년 만에 처음 겪는 참혹한 전면전이 벌어지게 하고, 백성을 버리고 한양을 빠져나와 도망치기에 바빴던 선조의 행동이 두고 두고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심이 이탈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바로 그 틈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가상의 인물 황정학과 실재(實在)한 이몽학을 한때 뜻을 함께했던 동지로 그린다. 두 사람은 ‘대동계’를 꾸려 왜구에 맞서지만, 조정은 이들을 역모로 몰아세운다. 이후 이몽학은 세상을 뒤엎고 왕이 되려는 야망으로 드러내고, 황정학은 그를 막기 위해 추격에 나선다. 영화는 역사극이라기보다 검객 서사에 가까운 결을 보여준다. 실제 사건의 뼈대 위에 인간의 배신과 이상, 복수와 상실을 덧입힌 셈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전하는 ‘이몽학의 난’은 영화보다 보다 구체적이고, 냉정하다. 실록은 사건의 발단을 짧고 단호하게 기록한다. “충청도 홍산의 서인 이몽학이 군사를 모아 난을 일으켰다. 반란의 출발점은 궁궐도, 대동계의 낭만도 아니었다. 충청도 홍산, 그 지역의 균열이었다.
이어 실록은 이몽학이 어떻게 사람들을 끌어모았는지도 적고 있다. “몽학은 그들에게 속임수로 꾀기를 ‘이번에 일으킨 의거는 백성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한 일이다. 거역하는 자는 죽음을 당할 것이고 순종하는 자는 상을 받으리라.’고 하니 모두들 좋다고 따랐으며, 사람마다 스스로 고관대작이 될 것으로 여기고 성불이 세상에 나왔다고 하였다.” 이 대목은 영화 속 혁명의 언어와 실록 속 선동의 언어가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가 이몽학에게 시대를 바꾸려는 비장함을 부여했다면, 실록은 그 비장함 뒤편의 선동과 광기를 놓치지 않는다.
실록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지점은 반란의 확산 속도다. 기록에 따르면 이몽학의 무리는 홍산을 습격하고 임천의 수령을 사로잡은 뒤 청양·정산 등 여섯 읍을 차례로 장악했다. 그리고 당시 민심의 동요를 이렇게 적고 있다. “소문만 듣고도 호미를 던지고 그들에게 투항하는 자가 줄을 이어 군사가 수만 명에 달하자…(이상 선조수정실록 30권, 선조 29년 7월 1일)” 호미를 버리고 반란군에 합류했다는 이 기록은, 당시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란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백성이 체제에서 먼저 떨어져 나갈 때 비로소 난은 커진다.
여기서 영화와 실록은 잠시 조우한다. 영화 역시 피폐한 민생과 조정의 무능을 배경으로 이몽학의 변신을 그린다. 다만 시간의 배열은 크게 다르다. 영화는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1589), 임진왜란(1592), 이몽학의 난(1596)을 하나의 흐름처럼 엮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여러 해에 걸쳐 벌어진 사건들이 영화에서는 거의 한 시기의 위기처럼 압축된다. 무엇보다 영화는 이몽학의 칼이 선조를 향하게 한다. 이같이 왕위 찬탈을 택한 것은, 왕권의 공백, 민심의 이반, 혁명과 역모의 경계를 한 장소에 밀어 넣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결말에서 크게 갈라진다. 실록 속 이몽학의 마지막은, 영화의 궁궐 결투보다 훨씬 더 냉혹한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