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거대한 은빛 날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늘어선 풍력발전기는 한때 ‘청정에너지’의 상징이자 강원특별자치도의 새로운 풍광을 완성하는 ‘랜드마크’로 대접받았다. 바람을 모아 전기를 빚어내는 그 장엄한 회전은 탄소중립 시대를 향한 희망의 몸짓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근 경북 영덕에서 들려온 비보(悲報)는 그 희망의 날개가 언제든 ‘죽음의 낫’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뼈아프게 경고하고 있다. 화마(火魔)에 휩싸인 발전기에서 작업자 3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는, 우리가 그간 ‘친환경’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겨진 위험의 민낯을 얼마나 방치해 왔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 한동안 기세 좋게 돌아가던 750㎾급 발전기 6기는 이제 고철덩이처럼 멈춰 서 있다. 2023년 이후 가동이 중단된 이 기체들은 수리조차 포기한 채 강풍과 폭우, 낙뢰라는 자연의 매질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고장 난 상태로 내버려둔 발전기는 말 그대로 ‘시한폭탄’이다. 여기에 강원자치도 내 229기의 육상풍력발전기 중 설계수명 20년을 넘긴 노후 설비가 38기에 달하고, 횡성의 20기는 곧 그 대열에 합류한다. 쇠락해가는 기계 뭉치들이 산꼭대기에서 위태로운 숨을 몰아쉬고 있는 셈이다. ▼더욱 기가 막힌 노릇은 이 거대 설비들이 제도적 ‘미아(迷兒)’ 상태라는 점이다. 현행 소방법상 풍력발전기는 소방시설 설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소방용수도, 화재 경보기도, 변변한 소화 장비도 갖출 의무가 없다. 불이 나도 속수무책이다. 특히 산악 지형에 위치한 특성상 헬기 없이는 접근조차 어렵고, 강풍을 타고 번지는 불길은 순식간에 대형 산불로 이어질 개연성이 다분하다. ‘청정에너지’를 얻으려다 자칫 ‘강원의 허파’를 태워 먹고 소중한 인명까지 앗아가는 모순적 상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그 힘은 막강하다. 풍력발전기가 그 힘을 빌려 문명을 밝히는 도구가 되려면, 먼저 인간의 안전과 자연의 보호라는 기본 전제 위에 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