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원래 문제를 푸는 곳이다. 정답은 칠판에 적히고, 성적은 숫자로 남는다. 그런데 원주의 한 고등학교 운동장에는 조금 다른 답안지가 놓였다. 지난 8일 육민관고 학생들과 교직원 141명이 헌혈버스 3대에 올랐다. 팔뚝을 타고 흐른 붉은 온기는 시험지에 적히지 않는 이름이었다. 누군가는 바늘 끝의 따끔함을 견뎠고, 누군가는 긴장한 친구의 등을 두드렸다. 이에 앞서 학생들은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교정을 돌며 헌혈 캠페인을 벌였다. 세상은 늘 젊은 세대를 두고 이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제일 뜨거운 피는 가장 어린 혈관에서 흐를 때가 많다. ▼‘일촌단심(一寸丹心)''. 한 치 붉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충절을 말할 때 쓰였지만, 꼭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장면에만 필요한 말은 아니다. 낯선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자기 피를 내어주는 마음 또한 단심이다. 육민관고 학생들의 헌혈은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다. 그래서 더 귀하다. 지난해 442건으로 도내 고교 1위를 기록했고, 올해도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그 안에는 이름 모를 환자들의 밤이 숨어 있다.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족, 혈액 부족 소식에 마음 졸이는 보호자들의 시간이 그 붉은 주머니 안에 담긴다. 학생들은 아마 그 얼굴들을 직접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가장 깊은 연대다. ▼고대 로마에는 ‘빵과 서커스''라는 정책이 있었다. 사람들은 배만 부르면 공동체의 위기를 외면한다고 했다. 지금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진다. 헌혈 역시 줄어든다. 피는 돈으로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다. 위기의 순간마다 결국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건너간다. 그래서 헌혈은 의학이면서 동시에 윤리다. ▼육민관고 학생들이 만든 전통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다. 그것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오래된 인간의 약속에 가깝다.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젊은 마음들. 그 ‘붉은 용기''는 오래 기억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