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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지혜를

신승춘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지역주민의 일상을 책임지고 지역의 미래를 맡길 적임자를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그 어느 때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고, 정책토론보다 네거티브성 비방전이거나 깜깜이 선거로 끝이 났다. 이제는 경쟁적으로 쏟아냈던 열정을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위해 추슬러야 한다. 종합행정의 만만찮음과 대내외적인 복잡성을 함께 풀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선출직은 결코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만능키를 갖지도 않았다. 좋은 공동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청해서 듣고 소통하는 열린 행정이 절대 필요하다.

그 첫걸음이 바로 경청하는 일이다. 읽기, 말하기, 쓰기를 교육의 기초라고 하지만, 듣기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한자어 ‘들을 청(聽)’은 독립적인 6개 단어의 합성어다. 즉 왕이 귀를 기울이듯이 열어두고, 열 개의 눈으로 상대의 표정과 비언어적 표현까지 세심히 살피며, 공감의 마음으로 상대와 하나가 되라는 뜻이 숨어 있다. 결국 진정한 경청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살피고, 마음으로 느끼며, 온전히 하나가 되는 태도일 것이다. 그래서 경청의 자세는 한번 말하고, 두번 듣고, 세번 맞장구를 치라는 ‘123법칙’에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J. Habermas)가 「의사소통 행위이론」에서 “서로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실의 공(사실), 마음의 공(마음), 약속의 공(예의)을 잘 던져야 한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소통은 어렵고 불통은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특히 선출권력들은 언필칭 국민과 주민의 대표라 강변하면서도 선출된 이후에는 비록 ‘무엇(목표)’은 생각할지언정 귀를 닫고 ‘어떻게(방법)’는 외면하거나 회피한다. 권력을 가지면 유아독존으로 홀로 아리랑이다. 일방통행이 다반사이고 심지어 역주행까지 한다. 불통의 정치와 행정은 배제와 격리의 담장만 높일 뿐이다. 하버드 법대 로렌스 레시그(L. Lessig)교수가 “민주선거로 선출된 정치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오히려 훼손시킨다”고 한 것은 괜한 지적이 아니다.

직접민주주의에 가장 근접한 스위스에서는 평균적으로 매년 4번 정도의 국민투표와 20여 차례의 주민투표를 한다. 특히 사용후 핵폐기물 처분장의 경우, 2011년에 후보지 두 곳을 선정한 이후 2027년 최종 결정을 위해 2015년부터 매년 50회 정도의 토론회를 실시해 왔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주민이 납득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기득권과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숙의와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인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인정하면 된다. 영국의 과학·의학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롭슨(D. Robson)은 「연결의 법칙」에서, 말다툼 중에도 정중함을 유지하면 의견이 다른 양쪽의 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다는 ‘몬테규의 법칙,’ 서로가 서로에게 온정적으로 의존하면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일본의 ‘아마에’ 개념, 결함을 솔직히 드러내면 유대가 돈독해진다는 ‘아름다운 허점효과’ 등을 차용하면 얼마든지 소통과 대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미래사회의 키워드는 공생과 공존, 연대와 협력, 집단지성, 융합과 통섭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적이고 공정한 절차와 합의기술이 중요하고, 그 첫 단추는 경청과 소통이다.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以聽得心) 최고의 지혜임을 지도자들이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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