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40년전 중국 민항기 춘천 불시착, 한-중 수교 출발점됐다

[강원도가 물꼬 튼 한·중 수교 30주년]
1983년 5월5일 납치된 민항기 춘천 불시착
당시 사이렌 소리에 시민들 “전쟁났다” 긴장
이를 계기로 교류시작 1992년 8월2

◇한중 수교 이전이던 1983년 5월5일 어린이날 오후에 중국 민항기가 6명의 무장승객에 의해 피랍돼 춘천 옛 캠프페이지 비행장에 불시착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적대시했던 한중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져 1992년 한중 수교라는 결실을 맺었다. 사진은 무장군인들의 철통경계 속에 관계자들이 조사하는 장면으로 뒤로 봉의산이 보인다. 강원일보DB

어린이날 휴일이었던 1983년 5월 5일 오후 2시. 중국 깃발을 단 민항기가 기와집 지붕에서 파편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굉음과 함께 춘천 미군기지에 불시착했다. 활주로를 벗어나 멈춘 민항기와 경계 경보 사이렌에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당시 고교 2학년생이었던 박근홍(56) 춘천시 근화동통장협의회장은 "중국 민항기 인 것을 보고 전쟁이 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한·중 수교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중국 민항기 춘천 불시착 사건이었다.

중국민항 소속 B-296 트라이던트 여객기는 승객 96명, 승무원 9명을 태우고 중국 선양을 떠나 상하이로 가다 공중 납치됐고, 연료가 모자라 비상 착륙했다. 6·25 전쟁 때 적국이었던 중국은 그때까지 우리나라와 아무런 외교 관계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춘천에 머물렀던 중국인 탑승객들도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강원일보가 세종호텔에서 머문 탑승객들을 취재해 보도한 1983년 5월 6일자 지면의 기사 제목은 '호기심에 찬 듯 두리번' '날씨가 더운지 창문 열고 부채질' '아침 식사 끝나자 긴장 풀고 안도' '자정 야식엔 샌드위치, 수우푸 들어' '시청은 과일, 칫솔, 치약줘 세심한 배려' 등이었다.

이들은 당시 한국정부의 배려로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초청되기도 했고, 이후 중국으로 돌아갈 때도 각종 선물을 받고 갔다. 비행기 납치범들은 대만으로 추방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33명의 대표단을 한국에 파견해 민항기 불시착 사건을 처리하고 협상하게 됐으며 이를 계기로 양국 간 비공식 교섭채널이 개설됐다.

이후 정부는 중국과 교류를 하나씩 넓혀 나갔고, 1992년 8월 24일 수교를 맺었다.

강원도도 같은 해 12월 중국 지린성과 '교류 협력 추진을 위한 기본협의서'를 체결했고, 1994년 11월에는 동북아 지사 성장회의 정례 협의체를 구성, 제1회 동북아 지사 성장회의를 개최했다.

한·중 관계는 수교 30주년을 맞아 기로에 섰다. 2016년 사드사태, 2020년 코로나19,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등을 거치며 오히려 국내에서의 반중 정서는 커졌다.

하지만 양국은 오랜 경제협력을 거치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액은 2000년 185억달러에서 지난해 1,629억 달러로 9배 가까이 증가했고 대중 수입 규모도 같은 기간 128억달러에서 1,386억달러로 10배 이상 커졌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 "중국과의 경제적 연관성은 커졌기 때문에 국제 정치 환경 속에서도 양국 관계는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하림·류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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