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월스트리트의 역사를 한눈에, 더 모건라이브러리 & 뮤지엄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반드시 찾아보는 장소가 있다. 바로 다운타운 월스트리트이다. 뉴욕증권거래소, 뉴욕연준 등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해준 자본주의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월스트리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돌진하는 황소상(Charging Bull)’ 주변에는 늘 인생 사진 한 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 있다. 월스트리트의 진정한 주인들. 그 오랜 세월 미국 자본주의를 지탱해온 거대은행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물론 월스트리트에 아직 일부 투자은행이 남아있긴 하다. 뉴욕멜론은행(BNY Mellon),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등이 있는데, 그러나 뉴욕멜론은행을 빼곤 월스트리트의 같은 장소에 남아있는 은행은 거의 없다. 특히 9.11테러 이후엔 대부분 은행이 아예 북쪽으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 따라서 지금 뉴욕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중심가는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미드타운 은행가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고 그 가운데에 거대은행 제이피모건(JP Morgan)이 있다.

개인적으로 뉴욕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러 월스트리트 방문도 권하고 싶지만 더 추천하고 싶은 장소는 바로 ‘더 모건라이브러리 & 뮤지엄(The Morgan Library & Museum)’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부근 메디슨 애버뉴 35번가에 위치한 이 건물은 투자은행 제이피 모건의 창립자 존 피어폰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1913)이 살았던 대저택을 개조한 뮤지엄으로, 금융 거부이자 예술품 컬렉터였던 그가 평생 수집한 고서, 회화, 조각 등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는 서재박물관이다.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예술품 감상도 감상이지만 그보다도 그가 살았던 인생이 곧 미국 자본주의, 투자은행의 역사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월스트리트의 역사를 더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를 돌며 사진찍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서 월스트리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소중한 공간이라 할만하다.

그럼 여기서 모건 라이브러리 뮤지엄의 주인장 존 피어폰트 모건의 생애를 잠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모건은 1837년 미국 코네티컷주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영국 상업은행(George Peabody & Co)의 파트너로 일했던 부친을 따라 청소년기 유럽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후에 그의 사업가적, 예술애호가적 기질을 키우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금융업에 뛰어들어 24세의 나이에 부친이 일했던 은행(George Peabody & Co)의 미국 지사장으로 인터내셔널 뱅킹 사업을 키우고, 당시 거대 인터내셔널 뱅킹 그룹이었던 Drexels of Philadelphia의 파트너로 일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모건은 미래를 예측하는 선지적인 시야와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유명한데, 당시 세상에 첫선을 보였던 철도사업이 미래의 원동력이 될 것을 직감하고 가능한 한 많은 철도노선을 독점하여 막대한 부를 이룬 것이 좋은 예이다. 그는 이어 철강사업에도 뛰어드는데 1901년 카네기 철강(Carnegie Steel)을 인수하여 최대 철강연합인 미국철강(US Steel)을 설립한다. 주식시장 붕괴 및 은행 연쇄도산이 금융시장 패닉을 가져왔던 1907년 공황을 극복하는 데에도 그의 리더쉽이 큰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당시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정부의 파나마운하 매입비용을 조달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토마스 에디슨의 축음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금융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영국정부가 보어전쟁(Boer War)을 치르는 데 일부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모건은 1913년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를 마감한다. 이 불세출의 금융거부가 죽자 그의 수많은 예술품들이 과연 어디로 갈지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는데, 불행히도 예술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았던 그의 아들(J.P.Morgan, Jr.)은 컬렉션의 절반 이상(5분의3)을 세금과 부채상환을 위해 시장에 내다 판다. 그나마 나머지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기증되어 지금까지 대중에 공개되고 있고, 그의 경쟁자 프릭(Henry Clay Frick)이 경매시장에서 일부 예술품들을 사들여 지금도 프릭 컬렉션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 하겠다. 이렇게 거의 다 처분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컬렉션들이 바로 지금의 모건라이브러리 뮤지엄에 있는 예술품들로, 모건이 매입했던 처음부터 현재까지 오롯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매우 유서 깊은 컬렉션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여기서 모건라이브러리 뮤지엄의 대표 컬렉션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선 모건라이브러리 뮤지엄은 1902~1906년 당시 유명 건축가 찰스 매킴(Charles McKim)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건물로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예술적 의미가 있다. 남북전쟁 이후 대번영기(gilded age) 미국의 거부들이 유럽의 귀족을 흉내내어 지은 대저택으로서의 역사적 의미도 크지만, 예를 들어 대리석과 모자이크 패널로 장식된 원형 홀(Rotunda)처럼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아름다운 인테리어들을 건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원형 홀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의 작품,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간라이브러리 뮤지엄의 대표 전시실은 메인 도서관 이스트룸(East Room)이다. 이곳에 대표 컬렉션들을 매년 6회 정도 돌아가며 전시하는데 그중엔 구텐베르크 성경 초판(전세계 남아있는 50권중 3권), 1789년 조지워싱턴의 추수감사절 선언문, 독립선언서 사본(22개중 하나) 등이 있다. 3층으로 빼곡하게 쌓여있는 책들은 눈으로만 볼 수 있게 철망으로 막아놓았는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서와 희귀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희귀본 중에는 19세기 영국 작가 윌리엄 새커리(William Thackeray, 1811~1863)의 친필 소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크리스마스 캐롤 초본, 키이츠(John Keats, 1795~1821)의 시 엔디미온(Endymion) 초본 등이 있다. 또한 그가 1902년 손에 넣은 700권의 고서집(15세기 이전)이 있는데 그 가치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라 한다.

한편 모건이 서재(Study)로 활용했던 웨스트룸(West Room)은 비단과 벨벳, 카펫으로 붉은 색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어두우면서도 우아하고 차분하며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모건의 큰 자화상이 서재를 내려보고 있고, 그가 앉았던 오래된 마호가니 책상과 의자는 세월이 흐름을 잊은 듯 오랜세월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실제 이 서재에서 국가 중요결정을 위해 모건과 월스트리트 거물, 정부 인사간 비밀 회동이 자주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역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존 피어폰트 모건은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은행 제이피 모건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이 막강하다. 갑자기 거대 투자은행이 맥없이 파산하고 경제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도산 위기에 휩싸였던 금융위기 때도 제이피 모건만은 거의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은행으로 평가받았었다. 그만큼 리스크관리에 철저했다는 의미인데, 정부를 도와 금융위기의 구원투수 역할을 수행했던 기관이 제이피 모건이었고, 당시 이 웨스트룸과 비슷한 공간에서 위기 타개책 마련을 위한 비밀 회동이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100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기관이 비슷한 역할(위기 소방수)을 했다는 게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월스트리트의 역사와 전통이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