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가수의 등용문
‘MBC 대학가요제’
얼마 전까지 ‘대학가요제’라는 대학생들의 노래 경연대회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MBC 대학가요제’가 제대로 된 명칭이다.
지금은 대회 자체가 중단됐으니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기쁨, 환희, 열광으로 대변되는 젊음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


‘따다다 따다다 딴 따 따다다 단 따 다~’로 시작되는 그룹 무한궤도의 ‘그대에게’가 전한 음악이 주는 전율의 느낌을 알게 한 것도 대학가요제 무대였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랬다. 숨죽여 기다리다 기대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명곡’을 영접했을 때의 기분은 대학가요제만이 줄 수 있는 선물 중 하나였다.
1977년 시작된 대학가요제는 1회 대회부터 인기몰이를 하면서 이듬해인 1978년 TBC(동양방송) 해변가요제(3회 만에 폐지), 1979년 MBC 강변가요제가 연이어 생겨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이 가운데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는 숨어 있는 지역의 고수, 실력 있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을 발굴, 대중에게 소개하는 그 당시 거의 유일했던 신인가수 등용문의 양대산맥이었다. 지금이야 대형 기획사의 주도하에 연습생 제도를 도입해 완성형 신인을 배출하는 것이 가요시장의 일반적인 트렌드가 됐지만, 그렇게 세련되지 않아도 대학생이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었던 그런 유니크한 노래들을 만날 수 있던 축제의 장이었다. 지역 예선을 거쳐야 했으니 대학가가 들썩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1977년 9월에 진행된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영예의 대상을 안은 수상곡은 서울대 농대 밴드 동아리인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였다. 그해 발표돼 인기를 끈 산울림의 데뷔곡 ‘아니 벌써’와 함께 트로트 등 성인가요가 주도하던 1970년대 말 우리 가요계에 충격을 안기며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한 노래들이다. 대한민국 가요사에서도 최고의 히트곡 가운데 하나로 아직까지 손꼽히는 명곡 중에 명곡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 어떡해’를 형제 그룹인 산울림 소속의 보컬 겸 베이시스트 김창훈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실은 김창훈도 샌드페블즈 소속이었고, 곡이 없어 대학가요제에 출전 못 하게 됐다는 밴드 후배들에게 ‘나 어떡해’를 넘긴 것이었다. 김창훈 자신은 형 김창완, 고려대를 다니고 있던 동생 김창익과 함께 산울림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그룹 ‘무이(無異)’를 결성해 ‘문 좀 열어줘’로 예선을 통과하지만 김창완이 서울대 졸업생 신분이라는 점 때문에 본선 무대에는 오르지 못한다. 서울대 2개 팀을 비롯해 20개 팀이 예선을 통과했지만, 결국 19개 팀만이 본선 무대에서 경쟁을 펼칠 수 있었다. 아무튼 산울림의 노래가 1977년 가요계를 평정한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제1회 대학가요제에 아쉽게도 강원도 내 대학팀은 단 한 팀도 본선 무대에 진출하지 못했다.
제1회 대회부터 ‘나 어떡해’ 같은 엄청난 곡이 나오고 인기를 끌게 되자, 대학가요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1983년 대학가요제(제7회) 강원도대회가 열린 사진 속 춘천 어린이회관(현 KT&G 상상마당) 야외무대의 풍경처럼,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 들어찬 인파의 물결이 말해주듯 당시 대학가요제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오로지 대학가요제를 목표로 대학에 입학하는 대학생이 생겨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대학가요제는 이후에도 명지대 김학래·임철우의 ‘내가(3회 대상)’, 연세대 이범용·한명훈의 ‘꿈의 대화(4회 대상)’, 동의대 높은 음자리의 ‘바다에 누워(9회 대상)’, 연세대 전람회의 ‘꿈 속에서(17회 대상)’ 등 수준 높은 노래를 세상에 선보이며 국내 가요시장을 이끌어 갔다. 강원도 대학팀이 대학가요제에서 첫 번째로 수상한 것은 1980년 제4회 대회 때다. 관동대 둘 하나 팀이 ‘그 누가’라는 곡으로 동상을 타낸 것이 처음이다. 1983년 사진 속 예선 무대를 거친 또 다른 관동대 팀이 ‘겨울 바다’라는 노래로 동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고, 1988년 제12회 대회 때 강원대 이연희씨가 ‘가슴에 남겨진 사랑의 숨결’로 동상을 받았다. 1990년대에 들어서도 도내 대학팀의 수상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1991년 제15회 대회에서 강원대 이선진씨가 ‘나만의 사랑’으로 이때까지 가장 높은 순위인 은상을 차지했고, 1998년 제22회 대회에서는 원주대 한도환씨가 ‘Making Dreams’로 동상에 올랐다.
그렇다면 도내 대학에서는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참가팀, 참가자가 없었을까. 있었다. 바로 2010년 제34회 대회에서 ‘With You’라는 곡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한림대 이인세씨가 그 주인공이다. 네티즌 인기상 등 2관왕을 차지한 이인세씨는 당시 한림대 의대생인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본보 2010년 11월29일자 15면 보도)를 모으기도 했다. 이인세씨는 2021년 tvN 예능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8 하하·별 부부편에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받은 의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미스터리 싱어로 출연해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 대학가요제는 표절 논란과 심사 문제 등이 불거지는 등 크고 작은 이슈들이 이어지다 2012년 폐지된다. 2019년 잠시 부활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그 이후로는 개최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젊음의 상징이던 대학가요제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