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 기력 보충에 으뜸 발디딜 곳 없던 가게들…역사의 뒤안길로

1980년대 복날 풍경

◇1980년 여름 시민들이 춘천시 동면 지내리 솔밭의 한 보신탕집에서 회식을 하고 있다. 강원일보 DB

인류의 육식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시작을 16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보고 있다. 이후 베이징원인,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인간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베이징 원인은 1923년 중국 베이징 저우커우덴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 인류로 호모 에렉투스에 속한 최초의 인간이다. 그들의 거주지엔 불의 사용 흔적이 있으며 불에 탄 동물의 뼈까지 발견됐다. 불의 사용으로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인류의 수명 연장은 시작됐다.

인류에게 육식은 생명 연장은 물론 두뇌를 크게 만들어 새로운 문명을 여는 시금석이 되었다. 소, 말, 돼지를 비롯해 개고기 섭취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필리핀, 베트남, 멕시코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는 음식 문화다.

개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면 경상남도 창녕의 신석기 마을에서 개의 뼈가 발견되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 안악3호분 고분 고구려 고분 벽화에 도축한 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발해 사람들도 개고기를 좋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개를 음식으로 애용한 것을 알 수 있다. 1816년경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이자 정치인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는 '농가월령가'라고 하는 시를 썼다. 농가월령가는 농가들이 연중에 보통 어떤 일을 하였는지 설명하고 있다. 8월달 표현에서 기혼 한 여자가 막걸리와 개고기와 떡을 들고 자신의 부모를 찾아가는 내용이 있다. 당시 개고기의 인기를 보여주는 자료다. 개고기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를 표시하는 최고의 선물로 일반인들이 즐겨 먹던 단백질 보충원이었다. 조선시대의 학자 홍석모가 1849년에 써낸 '동국세시기'도 개고기를 고추 가루와 파 등의 재료로 삶은 보신탕의 조리방법이 기재되어 있다.

1970년~80년대 초복, 중복, 말복이면 보신탕집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춘천 신북 소양집, 서면 오월리와 신남면 삼포의 영양탕집, 춘천시내버스 종점의 경남집, 경북집은 복날 단체 회식 장소로 탕을 먹으며 더위를 이겨내곤 했다. 기자가 1992년 강원일보 입사 때만 봐도 복날이면 보신탕집은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보신탕집은 단체 회식 장소로도 자주 이용되던 음식점이었다. 그러나 현재 개고기의 인기가 뚝 떨어져 개고기의 파는 영양탕, 보신탕집은 가물에 콩 나듯 찾기 어려워졌다. 특히 개를 반려동물로 여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개고기 섭취는 점점 박물관으로 들어갈 위기에 처해 있다. 고대에서부터 먹던 개고기는 사라져가는 우리의 음식문화다.

남 강원도 산림당국은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지난 2001년 금강산을 방문했다. 금강산의 소나무들이 솔잎혹파리 피해를 크게 입어 누렇게 죽어 가자 남·북 강원 협력사업으로 산림 병충해 공동방제 사업을 실시했다. 남 강원도 산림관계자들은 시범방제을 통해 기술을 북한 기술자들에게 솔잎혹파리 방제를 전수해 산림을 통한 새로운 남북 협력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북 강원도 사람들은 금강산 소나무를 살려낸 남측 산림관계자들에게 단고기를 대접하며 고마움을 전달했다.

과거와는 다르게 개의 역할이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로 바뀌면서 개고기를 섭취하는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개를 먹는 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문화지만 반려동물인구가 급속히 늘어난 지금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음식도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를 담아내는 문화이다 보니 유행을 탄다. 앞으로 보신탕으로 복날을 보내는 복땜문화는 문헌에서나 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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