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접경지역 규제 완화 선언이 아니라 실천 중요

양구 중심부 9.3㎢ 비행안전구역으로 묶여
주민 일상·재산권 침해... 전면 조정해야
지자체·국방부·주민, 협의체 구성할 때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은 지난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비행기가 이착륙하지 않은 군 비행장 때문에 여전히 고도제한 규제를 받고 있다. 실제로 양구읍 중심부 9.3㎢가 비행안전구역으로 묶여 있어 주민들은 주택 하나 신축하거나 증축할 때마다 국방부와 협의해야 한다. 심지어 3층 이상의 건물도 짓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활주로’가 지역의 발전을 수십 년간 가로막아 온 셈이다. 지난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김진태 도지사가 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정말 비행기가 단 한 번도 뜨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부처에서 잘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반응은 비현실적인 규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지역사회는 제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양구 비행장은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설정된 제한구역으로, 그 목적은 군사 작전의 효율성과 안전을 확보하는 데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고도제한의 원인이 되는 항공기 운행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며 헬리콥터 운용이 전부다. 주민들의 일상과 재산권이 침해되는 만큼 이 규제가 과연 합리적인지 냉정한 재검토가 시급하다. 비단 양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접경지역은 오랜 세월 지정된 군사보호구역으로 인해 지역 개발에 극심한 제약을 받아 왔다. 고성, 인제, 화천, 철원 등지에서는 공장 설립이나 주택 신축은 물론, 관광 인프라 구축에도 수많은 제한이 따랐다. 이런 규제는 군사 안보와 무관하게 행정 관행으로만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이러한 불합리한 규제를 전면 재조사하고, 실효성이 없는 구역은 과감히 해제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강원특별자치도는 전국에서 인구소멸 위험이 큰 지역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양구군은 청년층 유출과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으며, 지역경제를 살릴 산업 기반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처럼 극한의 제약 속에서 지역은 도태되고 있는데, 군사적 필요가 사라졌음에도 규제는 변함없이 굳건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시대, 균형발전 정책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불필요한 군사규제는 주민에게는 생활권 침해이고, 기업에게는 투자 기피 요인이며, 지자체에게는 성장의 족쇄다. 양구 사례는 그 상징적 단면에 불과하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단순한 ‘검토’ 수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 개선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규제 해제 대상 구역을 실사하고, 국방부·지방자치단체·주민 간 협의체를 구성해 단계적 해제를 추진해야 한다. 필요시에는 군 작전과 국민 재산권 보호 간의 균형을 위한 입법 정비도 이뤄져야 한다. 강원특별자치도는 더 이상 ‘안보’라는 이름의 그늘 아래에서만 머물 수 없다. ‘지방시대’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어야 하며, 그 출발점은 바로 양구의 하늘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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