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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무궁화

◇일러스트=조남원기자

홍천에는 ‘무궁화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 많다. 이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인상 깊은 이들이다. 새벽 산책길에서 본 무궁화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해 20년 넘도록 무궁화만 그린 김종희(61) 작가, 무궁화 작가도 모자라 홍천에 터를 잡고 무궁화 묘목 1,000그루를 심은 김영배(65) 한국무궁화미술협회 이사장, 투병 중에도 양묘장에서 밤낮없이 무궁화를 키우는 김문식(74)씨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한서대상 수상자들이다. ▼무궁화에 인생을 바친 홍천 사람들의 원조는 서면 모곡리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던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1863~1939년) 선생이다. 이순자의 ‘무궁화 사랑으로 삼천리를 수놓은 남궁억(역사공간 刊)’에 따르면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 통치라는 이름으로 삼엄한 감시를 벌일 때, 무궁화 묘포를 볼 수 있는 곳은 남궁억이 있는 보리울뿐이었다. ▼남궁억 선생은 무궁화 묘목을 수십만주씩 길러 학교, 교회, 사회기관에 나눴다. 일본 관리들이 학교를 찾아오면 뽕나무밭이라 속이기도 했다. 당시 모곡교회와 모곡학교를 통해 전국에 나간 무궁화는 30만주 정도였다. 대부분 우체부가 자전거에 싣고 나갔는데 남궁억 선생의 나라 사랑 정신에 공감하며 기쁜 일로 감당했다고 한다. 선생은 아이들이 좋아하고 쉽게 따라할 만한 놀이와 예술도 고민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술래잡기의 일종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다. 세계적인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상징적인 장면에는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아무런 희망이 없던 일제강점기, 무궁화는 위로이자 사랑이었다. ▼K로 시작하는 한류 열풍이 전방위로 확산되며 절정에 달한 시기에 ‘K꽃’인 무궁화도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무궁화는 영어로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이고 샤론은 평화의 의미가 있다. 국내외 뉴스에 ‘전쟁’이 키워드인 시대,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무궁화가 필요한지 모른다. 오랜 어둠과 고통을 지나 광복 80주년에 핀 무궁화는 언젠가는 올 평화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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