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감 커지는 상징적 장면
이재명 정부 ‘강원 출신·연고 장·차관 10명 시대’. 그 자체로는 놀랍고 반가운 일이다. 대통령실 정무수석(우상호·철원), 국정상황실장(김정우·철원), 국무조정실장(윤창렬·원주), 법무부 장관(정성호·양구), 행정안전부 장관(윤호중·춘천 연고), 통일부 차관(김남중·강릉), 행정안전부 차관(김민재·홍천),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이호현·양구), 인사혁신처장(최동석·원주), 중앙선관위 사무총장(허철훈·영월) 등 핵심 요직에 강원 출신 인사들이 포진했다.한때 ‘변방’으로 불리던 강원특별자치도(이하 강원자치도)가 이제 중앙 정치의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 지역이 던져야 할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단순히 ‘강원도 출신’이라는 사실에 자축하고 기대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이 기회를 전략적으로 이용해 지역의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을 것인가?
이재명 정부 1기 내각에만 최소 10명의 강원 출신·연고 인사가 요직에 중용 됐지만 그것이 곧 성과는 아니다. 즉, 강원도의 존재감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지만 이 ‘존재감’이 ‘영향력’이나 ‘성과’로 자동 전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이들 다수는 서울과 중앙 정치·관료 시스템에서 성장한 인사들이며 지역과의 연결 고리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약해져 있다. 반면 강원자치도는 이들과 긴밀히 소통할 정책 네트워크나 실무 채널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결국 “지역은 기대하고 있는데, 연결선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기회는 또다시 무기력하게 지나간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지역이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어떤 정책을 설계할 수 있는가? 누가 이들과 소통할 창구가 될 수 있는가? 지역 현안을 어떻게 전달하고, 구체적 해결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 정치적 연고만으로는 시대를 바꿀 수 없다. 연고를 ‘정책 파트너십’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차원에서는 중앙 인사들과의 정기 정책 브리핑 또는 자문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인재는 하루아침 성장 안 해
그리고 각 부처 핵심 정책 흐름에 맞춘 강원자치도형 전략 프로젝트 발굴을 미룰 수 없다. 또 지역 현안을 데이터 기반으로 정리해 정책 어젠다화해야 한다. 이러한 ‘역방향 연결(지역 → 중앙)’이 작동할 때 비로소 인재는 ‘활용’될 수 있다. 인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번 인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강원자치도 내부 시스템이 과연 인재를 길러내고 있는가?” 물론 이번 인사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학업과 경력을 쌓으며 성장한 인물들이다. 이 사실은 강원자치도 내부의 인재 육성 체계가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강원자치도 고교의 인재 육성 시스템은 충분한가? 지역 대학은 지역 리더를 배출하고 있는가? 청소년·청년에게 ‘공공 리더십’의 경로를 제시하고 있는가?
인재는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 꾸준한 기회, 장기적인 성장 설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사람을 키우는 전략’이 필요한 시대다. 역대 정부 사례에서 배울 점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민간과 지역 전문가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인재풀 제도’를 운영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역균형인사 원칙을 기반으로 지역 출신 인재를 꾸준히 발탁했다. 윤석열 정부는 청년보좌역과 민간 전문가 채용으로 다양성을 추구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을 미리 찾고, 키우고, 연결했다”는 점이다. 지금 강원자치도에도 이런 시스템이 시급하다. 도 차원의 인재 DB 구축, 고교·대학·지자체·공공기관 연계 리더십 아카데미 운영, 중앙 인사와 청년을 잇는 멘토링 플랫폼 개발 등. 이제 강원자치도는 ‘사람을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를 묻고, 답해야 한다. 활용하지 못한 인재는 곧 잊힌다. 강원자치도 출신·연고 장·차관 10명. 이 자체로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그 장면을 다음 장면으로 연결할 기획력이 없다면 그저 한순간의 반짝임으로 끝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