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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체험학습이 사라지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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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전 인제교육장, 강원교육문학회 회장

학교에서 단체 활동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 소풍, 운동회, 각종 교외 활동까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두고 “교사들이 책임을 회피한다”, “MZ 교사들은 헌신이 부족하다”, “관리자의 리더십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미 학교는 학생 생활지도와 학교폭력 문제로 극심한 부담 속에 놓여 있었다. 교사 한 사람이 수십 명의 학생 안전과 생활, 민원과 갈등까지 모두 떠안고 있는 구조 속에서 교육활동은 점점 방어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춘천 퇴계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 중 발생한 안타까운 교통사고 사망 사건은 전국 학교 현장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한 아이의 죽음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리고 담임교사 역시 도덕적 책임이나 현장 인솔자로서의 아쉬움에 대한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사법부는 담임교사에게 형사적 책임을 물었고, 판결문 속 “금고형”, “해직 사유”, “중대한 과실”이라는 단어들은 전국 교사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그 순간부터 현장체험학습은 교육활동이 아니라 ‘형사 책임의 위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수학여행 한 번 잘못 가면 교직 인생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 앞에서, 어느 교사가 선뜻 인솔을 맡겠는가.
어느 교감과 교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하겠는가.
일부에서는 “모든 책임을 교장·교감이 지도록 법을 바꾸자”고 말한다. 그러나 교장과 교감 역시 교사다. 책임의 대상을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학교 현장이 흔들리는 이유는 단지 한 사건 때문만이 아니다.
그 사건을 바라보고 판단한 사법적 기준이 교육 현장의 현실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판사는 법리에 따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판결이 이후 전국 학교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 것인지까지 충분히 고려했는지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학교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제공하라”는 요구와 “단 한 건의 사고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압박 사이에서 무너지고 있다.
체험학습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다.
교실 밖에서 배우는 협동, 질서, 배려, 공동체성은 책상 위 수업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교육의 중요한 영역이다.
그런데 이제 학교는 묻고 있다.
“혹시 사고가 나면 누가 감옥에 가는가?”
이 질문이 교육보다 먼저 떠오르는 순간, 현장체험학습은 사실상 끝난 것이다.
새롭게 선출될 교육감들과 교육 당국은 이 문제를 단순히 매뉴얼 몇 장 추가하는 수준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규정과 책임 전가만 늘어난다면 학교는 더욱 움츠러들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활동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어디까지를 개인의 형사 책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법적 재검토다.
그래야만 학교는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위험 없는 감옥 같은 학교가 아니라, 살아 있는 배움의 공간에서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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