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모바일 구독자 280만
문화일반

[中불교문화유적 순례기]下·불교성지 산시성 오대산

◇대국 중국을 상징하는 '자금성' 태화전 광장의 위용.

 -당나라때 360여개 사찰 1만여 스님 수행

 중국은 지난 1982년 전국 44곳을 ''풍경명승구'로 지정했는데, 그중 산시성 오대산이 제1번이다. 3,000m를 상회하는 5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오대산권(둘레 250㎞)은 65개의 사찰, 2,500여명의 스님들이 상주하며 수행하고 있다. 또한 40여개 사찰이 복원 중이다.

 제1회 중국 오대산 불교문화절 개막식이 열린 첩첩산중 오대산광장. 움집한 5만 관객들을 바라보며 중국의 힘을 직감한다. 아울러 그들의 가슴에 담긴 불교의 위상도 읽는다.

 산산시성인민정부가 주최한 불교문화절 행사를 취재를 하고 있는 중국 기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대산에는 2만명 정도가 거주하지만 중국 각 지방은 물론 외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항상 10만명이 생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지난 5월 한국 월정사와 산시성정부간의 황금유대결연 광경이 TV와 신문을 통해 중국전역에 소개됐다고 전해줬다.

 오대산 불교문화절을 주최한 신시성인민정부는 행사를 위해 10만여평 규모의 오대산광장을 조성했고, 한국 월정사방문단, 중국 최고 인기가수 덩걸, 소림사공연단 등을 초청하는 정성을 들였다.

 산시성관계자는 “당나라 때 오대산에는 360여 개의 사찰과 1만여명의 스님들이 상주하며 수행했던 곳”이라며 “성정부에서는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시절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복원사업을 진행하고있다”고 설명했다. 또 밀려드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비행장도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사장을 빠져나와 계(戒)를 받는 4대 사찰중 한 곳인 벽산사(碧山寺)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중국공상은행 중국인민보험공사 지점을 목격했다. 거대한 대회진사묘군(臺懷鎭寺廟群, 사찰마을)의 규모가 거기서 읽혀진다.

 중국 오대산에는 5개의 선방이 있으며 대부분의 사찰들이 중국 국무원에 의해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문화재인 '전국중점문물단위'(全國重點文物單位)로 지정돼 있다. 그중 규모가 가장 크고 역사가 오래된 조사(祖寺)가 현통사((懸通寺)로 이곳이 오대산불교협회 총림이다. 현통사 일대는 그 자체가 하나의 궁궐이다. '사찰단지'라고 불러야 할 만큼 여러 사찰이 마치 연립주택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중국 오대산의 상징으로 보수공사중인 대백탑(大白塔, 높이 56m)아래 감춰져 있는 명소를 찾았다. 모택동이 장개석의 국민군과의 1차 전투에서 패하고 재기를 모색하던 곳이다. 부인 강청과 함께 지냈던 집안 살림살이와 기념물들을 소박하게 보전해 놓고 있다. 입구에는 2001년 방문했던 강택민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다.

 스님들이 모두 불교문화절 개막식에 참석한 관계로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돌아선 아쉬움을 인근 수상사 방장스님의 생애를 듣은것으로 보충했다. 7살때 불가에 귀의했다는 노스님은 문화대혁명 당시 사찰에서 쫓겨나 30여년간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회고했다. 또 사찰보수·관리·운영은 방문객들이 놓고간 불전으로 충당하며 행사개최, 신도가정 방문, 사찰외부 집회 등은 전혀 할 수 없는 중국불교의 현실을 들려줬다.

 오대산 대회진사묘군을 떠나 들어오던 고갯길을 되돌아 오는 길. 차창밖으로 청량농원(淸凉農園)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오대산 상원사내에 소재해 북방제일의 수행처로 각광받고 있는 청량선원(淸凉禪院)이 떠오른다. 양국 오대산이 청량(淸凉)산인 것 또한 인연이다.

산시성 성도(省都)인 해발 800m 태원시(인구 300만)에서 하룻밤을 묶고 쌍림사(雙林寺)와 평요고성(平遙固城)으로 향해 끝없는 평원 연경땅을 달린다.

 산시성은 중원땅인 하남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던 군사적요충지. 삼국지에 등장하는 용맹무사한 장수들과 기마병들이 대결하던 역사에 묻힌 전쟁터 연경지역이다. 안내원은 '중국을 얻으려면 연경을 손에 넣어라'는 말이 전해온다고 했다. 안내원은 이곳 산시성의 거부들이 장개석의 국민군 재정을 담당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모택동이 가난에 찌든 산시성 농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시작해 천하를 손에 넣었다는 설명에서 빈부의 격차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요인임을 눈치챈다.

 쌍림사와 평요고성은 전국중점문물보호단지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 쌍림사 불상들은 비록 바랬지만 800년전 채색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사찰 전체가 불교미술박물관인 셈이다. 평요고성은 명·청시대 7만명이 거주했던 옛 모습을 그대로다. 보존되고 있는 중국 첫 현대은행인 '일승창'과 건축물들이 부유했던 옛 영화를 나즈막히 속삭이는 듯하다.

 경주 '계림(鷄林)'을 연상시키는 4만㎡ 규모의 3000년 세월을 버텨온 거대한 정원 '진사(晋寺)'도 조형미를 자랑하는 명소. 궁중생활을 묘사한 채색 조각상들, +자형으로 중국 고대 다리를 연구하는 중요한 사료 어소비량(魚沼飛粱)도 그 조형미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북경으로 돌아왔다. 서태후가 이곳을 조성하느라 국력을 소진, 청나라의 멸망의 한 원인이 된 '이화원(梨花園)' 백송(白松)으로 유명한 1300년 역사의 계대사(戒台詞)도 중국의 깊고 화려한 역사를 보여줬다.

 현대 중국의 상징 '천안문광장'을 거쳐 대국의 상징물 '자금성(紫禁城)'에 들어섯다. 황제가 거처했던 화려하고 웅장한 자태, 보수공사가 한창인 모습, 담넘어 로 보이는 빌딩들에서 변화하는 중국의 실상을 읽는다.

 천진비행장에서 솟아오른 귀국비행기에서 차창을 통해 중국땅을 내려다본다.

 우리와 관련된 역사속에 애증이 분명한 중국. 7,000여개라는 천진시의 공장들, 굴뚝이 내뿜는 희뿌연 연기가 서해바다쪽 하늘위로 솟아 오른다. 그 모습에서 '동북공정'을 내세워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등 다시 한반도를 불편케하는 현실이 오버랩됐다.

<龍鎬先기자·yonghs@kwnews.co.kr>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