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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세계역사문화 기행]하늘속 파미르고원을 오르다

중앙아시아의 남쪽을 떠받치고 있는 파미르고원은 중국에서 뻗어 내린 천산 산맥과 인도에서 뻗어 올라온 히말라야 산맥이 만나는 곳 일대에 넓게 퍼져 있는 산악 군이다. 중심부는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중국 국경이 산세를 따라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늘과 나란히 한 '세계의 지붕'

 필자는 주 우즈베키스탄 대사로 재임하는 동안 현지에 상주하는 UNHCR(유엔 난민기구)의 협조를 얻어 파미르 고원의 중심부 1700㎞를 나흘간 차량으로 여행한 일이 있다. 어릴 때 학교 지리시간에 배운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은 구구단처럼 평생 머릿속에 박혀 있었는데 그 중심부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파미르 내륙에 이르는 길은 두 세 개가 있지만 동부 우즈벡의 페르가나 계곡 안디잔(Andijon)을 거쳐 키르키츠스탄의 오슈(Osh)를 경유하여 중국 국경이 가까운 타지크 동부 파미르로 오르는 장거리 루트가 가장 가 볼만한 길이다.

 이 루트는 북부 아프간 지역의 난민들에게 구호식량을 나르는 UN 보급차량이 다니는 비상 도로로 허락 없이는 들어 갈 수 없는 지역일 뿐 아니라 워낙 험준하고 3~4일씩 걸리기 때문에 일반 차량은 다니지 않는 곳이다. 더구나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눈으로 닫히게 되어 여름에만 열리는 곳이다. 중앙아시아의 남쪽을 떠받치고 있는 파미르 고원은 해발 3천-5천m의 고원지대에 험준한 6천~7천m의 만년설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기도 하고 넓은 초원평야가 지평선이 보이도록 펼쳐져 있기도 한데 중국에서 뻗어 내린 천산(天山) 산맥과 인도에서 뻗어 올라온 히말라야 산맥이 만나는 곳 일대에 넓게 퍼져 있는 산악 군이다. 고원의 중심부는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중국 국경이 산세를 따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인데 최고봉은 타지키스탄 땅에 있는 7495m의 코뮤니스트 봉(峰)이다. 구(舊)소련 땅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

 페르가나 계곡을 지나 키르기스의 오슈를 거치면서 서서히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싸리타쉬(Saritash)에 이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편 동쪽으로 70Km 가면 중국 국경을 넘어 신장 위구르의 카쉬가르 호탄 우루무치로 내려간다. 오른편 남쪽으로 내려가면 타지크 국경을 건너면서 본격적으로 파미르 산속으로 접어든다. 왼쪽으로 중국과의 국경선 철조망을 보면서 남쪽으로 계속 달려 해발 4655m의 아크바이탈 고개를 넘어 해질 무렵 황량한 모래 촌 무르갑(Murgab)에 이르렀다. 460㎞를 달려 고원에 이르자 무쏘 짚 차 는 불완전 연소로 시커먼 연기를 품고, 고산병으로 운전기사는 얼굴이 노래지더니 밥도 못 먹고 누워버렸다. 벽에 뚫린 구멍에 매달려 두 방을 비춰주는 호롱불 같은 전깃불이 있는 하루 1달러짜리 여관이라도 하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이튿날 아침 새벽 해발 3665m의 무르갑을 떠나 300㎞의 산길을 달려 오후 3시쯤 아프간 국경도시 해발 2070m의 호로그(Khorog)에 닿았을 때는 한결 고산병에 적응되었다.

 호로그는 타지크 동부 내륙 파미르 고원에서 가장 큰 마을인데 아프간 내전 때는 한때 반군(叛軍)의 거점이기도 했다 . 강 건너 아프간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 하면서 섞여 장사도 하고 물건도 거래하는 곳이다. 노변에 차를 세우자 열 대 여섯 살 아이들이 몰려와서 하얀 마약가루를 펴 보이며 서로 사라고 야단들이다. 단속하는 사람도 없다 . 턱수염을 기른 젊은 청년 둘이 다가오더니 자기네는 반군(叛軍)인데 당신들은 어디서 뭣 하러 왔느냐고 묻고 차 안을 살피더니 가버렸다. 길거리 노점에는 손때 묻은 담뱃갑과 소시지 몇 개가 걸려 있다. 이곳부터는 계속 아프간 국경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파키스탄 땅까지도 멀리 보이는 하천계곡을 달려 동쪽으로 험한 산길을 갔다. 이 길은 7백여 년 전 아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가 지나 갔든 길이다. 날이 저물어 찾아든 곳은 랑가르(Langar)라는 작은 마을의 토담집 민가였다. 기꺼이 잠자리를 허락해 준 주인은 마흔세 살의 가장이었는데 노모와 죽은 형님의 형수와 조카들까지 열세 식구를 거느리고 닭 기르고 밭 갈아 먹 고 사는 하늘 아래 첫 동네의 순박한 산 사람들이었다. 토담집에서의 단잠은 아침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서야 깨었다. 밖으로 나가니 눈부신 아침 햇살에 강 건너 아프간 쪽 만년설봉들이 코발트 색깔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반사되는 천국 같은 황홀경이 전개되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맑은 도랑물에 세수를 하고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아프간 국경을 따라 아무르 강 계곡 길을 달리는 동안 양쪽으로 쳐다보이는 만년설의 준봉들은 장엄했다.

 이날은 내전 시 반군(叛軍)의 습격을 받기도 했던 국경초소들을 여러 곳 통과했는데 모두 러시아 군들이 지키고 있었다. 소련이 무너지면서도 구(舊)소련 국경들은 러시아군이 지키고 관리하도록 협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초소에서는 강으로 목욕하러간 초소장을 불러오는데 반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초소장의 싸인이 있어야만 통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늦은 오후 무르갑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예비연료도 다 떨어져 한 소년이 안내해 주는 민가에서 밀매하는 기름으로 재급유하였다. 우즈백보다 세 배 비싼 이 기름들은 지나다니는 유엔 보급차량 들이 팔아먹은 것이다.

 460㎞를 달려 어둠 속에 멀리 불빛을 보고 찾아 든 곳은 초원의 한 키르키츠 유목민 유르트였다. 70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내외가 세 손자녀들과 함께 유목을 하고 있었다. 난방은 없었지만 아늑한 유르트는 훈기가 있는 훌륭한 안식처였다. 희미한 등불아래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면서 밤늦도록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꾸덕꾸덕한 양고기 말린 포를 안주로 말 젓을 발효시켜 만든 마유주를 마셨는데 새콤한 맛에 취기가 올라 우리 막걸리 맛과 비슷했다. 유르트 밖으로 나가니 맑은 밤하늘은 초롱초롱한 별들이 쏟아질 듯 눈앞에 가깝게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영롱한 별들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파미르 고원 여행의 마지막 밤은 너무도 환상적이어서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나흘간의 파미르 고원 여행에서 내려온 필자는 하늘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토담집과 유르트에서 만난 산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천사였다. 그 옛날 혜초 스님과 현장법사 같은 선인들이 이길 어딘가에 남겼을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페르가나 계곡으로 되짚어 돌아가는 발길은 가볍기만 하였다.

 최영하·본보 독자위원장·前 우즈벡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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