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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법흥사의 옛 이름 영월 흥녕사 크게 번성시킨 징효대사 기려

48. 흥녕사 터 징효대사 보인탑비

◇흥녕사 터 징효대사 보인탑비. △보물 제 612호 △제작연도: 고려 944호 △소재지 : 영월 법흥사 △높이 : 406cm

영월군 수주면과 평창군 방림면, 횡성군 안흥면에 걸쳐 있는 '사자산'은 법흥사를 처음 건축할 때 어느 도승이 사자를 타고 이 산으로 왔다고 해 이 같은 명칭이 붙었다.

법흥사는 통일신라 말기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에 속한다. '온갖 번뇌와 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을 일컫는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곳이다. 흥녕사는 법흥사의 옛 이름이다. 이 비의 형식은 귀부(龜趺·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뿔 없는 용의 모양을 아로새긴 형상)로 덮은 신라·고려의 전형적인 석비 양식을 갖췄다.

882년 무렵 사자산의 운예선사가 절중(징효대사)에게 흥녕서원의 주지를 맡아달라고 요청하자 받아들였다. 절중이 흥녕선원에 머무르니 그의 명성이 자자하여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번창했다. 지역사회의 영향력도 커져 갔다. 그러나 농민 봉기가 발생하자 절중은 상주 남쪽으로 피란을 갔고, 이때 흥녕선원은 불에 타 버렸다. 이후 여러 곳을 전전하다 900년에 은강선원에서 입적해 다비(불교식 장례 의식)했다.

하지만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석비는 비신 일부에 약간의 손상이 있을 뿐 완전한 형태로 남아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비문은 최언이 짓고 글씨는 최윤봉이 썼으며 최오가 새겼다. 귀부는 생동하듯 기상이 넘치고 부릅뜬 눈에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최영재기자 yj5000@kwnews.co.kr 자료제공=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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