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림병 중 흔하면서도 참혹
'염병' 관련 속어·속담 다양
“염병을 떨다”란 엉뚱하거나 나쁜 짓을 함을, “염병에 땀을 못 낼 놈”이란 염병을 앓으면서도 땀도 못 내고 죽을 놈이라는 뜻으로 남을 욕하여 이름을, “염병 치른 놈의 대가리 같다”란 염병을 앓고 난 뒤에 머리카락이 없어지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게 되었음을,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란 남의 괴로움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자기의 작은 괴로움보다는 마음이 쓰이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런 여러 염병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옛날부터 흔했고, 무서운 유행병인 것임에 틀림없다.
예전 사람들을 몸서리치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 전쟁과 돌림병이라 해도 무방할 터다. 흉흉한 돌림병 중에 염병(染病)이라는 것이 있었으니 이는 장티푸스(Typhoid fever)를 속되게 이르며, 전염성이 있는 유행병을 뜻하기도 하는데, 흔히 장질부사(腸窒扶斯)라고 쓴다. 또한 욕설로 많이 쓰는 '이런 염병할' 또는'염병할 놈'이란 바로 장티푸스에 걸려 죽을 놈이라는 고약한 말이다. 염병에 걸리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 말이 욕이 되었는지 알 만하고, 그 병의 특성을 앎으로 그 말의 참뜻을 짐작할 수 있다.
옛날엔 위생관념이 철저하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수리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조금만 비가와도 홍수가 지고, 잠시만 가물어도 가뭄이 들었다. 따라서 기아(饑餓)에 허덕이고, 면역력이 떨어지기에 쉽게 전염병(傳染病)이 돌았다. 그 가운데 가장 참혹한 것이 장티푸스인데, 이 병은 삽시간에 고열을 일으키고 설사를 하다가 죽게 만든다. 이렇게 고열 탓에 뜨겁다는 뜻의 온(溫)자를 써서 온역(溫疫)이라고도 하였고, 전염성이 워낙 강하였기에 옮긴다는 뜻의 염(染)자를 써서 '염병(染病)'이라 하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이다. 한번 퍼졌다 하면 마을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공포의 병이었던 염병은 워낙 고열이기에 이 병을 앓고 나면 머리털이 숭숭 다 빠져 민둥산(독산·禿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