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트만두 계곡의 사람들은 거리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거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로 붐빈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차량들, 오토바이들, 그리고 인도를 가득 채운 사람들. 심지어는 개, 비둘기, 원숭이, 소 등등도 그 대열에 참가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대체 어디를 저렇게 바쁘게 가고 있는 것일까. 그 흐름에 떠밀려 걷다가 지친 여행자들은 결국 사원 근처 술집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 맥주로 갈증을 달랜다. 딴딴해진 다리를 주무르며 광장과 광장으로 이어진 골목들의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러다 지치면 맥주 한 병 더 마시며 사나흘 동안 지나온 길들의 사람들을 회상한다. 그곳은 도공이 망치로 구리를 두드리는 파탄(Patan)이고 티베트의 늙은 승려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향을 피우며 절을 올리는 부다나트 스투파(Boudhanath Stupa)다. 어쩌면 원숭이들이 무리 지어 길고 긴 돌계단을 오르내리는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 사원이거나 짱구나라얀(Changu Narayan), 박타푸르(Bhaktapur)일 수도 있다. 낯선 나라의 낯선 사원들을 돌다 보면 기억은 뒤죽박죽이 된다. 이곳이 저곳 같고 저곳이 이곳 같다. 사원의 신들도 거리를 메운 사람들처럼 뒤섞여 버린다. 어쩌겠는가. 북적거리는 기억들이 에베레스트 맥주에 취해 가라앉을 때까지 휴대폰의 사진들이나 뒤적거리며 멍 때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배경 음악은 존 바에즈의 ‘A Hard Rain’s A-Gonna Fall인데 당연히 소낙비는 내리지 않았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짐을 등에 지고 가는 아주머니. 막대기에 빨간 솜사탕이 담긴 비닐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걷는 사내아이. 사원 앞에서 비둘기 모이를 파는 두 여인. 담장 아래 땡볕에서 신발도 양말도 없이 취해 잠든 사내와 그 옆의 개 한 마리. 붉은 옷과 모자가 잘 어울리는 여자아이. 그리고 이름의 마지막 자가 숙, 정, 순, 관, 순, 원, 대로 끝나는 우리 일행들. 사람들, 사람들...... 한자리에 둘러앉아 붉은 양고기를 자르는 여인들. 사원에서 화보를 찍는 남녀 모델. 뭔가 심오한 얘기를 나누는 듯한 노인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꽃을 파는 여인. 계단 아래서 두 손을 벌린 채 구걸을 하는 노파. 노란 꽃 한 송이를 머리에 꽂은 채 기도하는 여자아이.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고 춤을 추며 행진하는 여인들. 히피 차림의 여행자 부부. 실로 엮은 야자수 잎을 파는 상인. 사람들,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신들은 온갖 형상과 표정을 한 채 축제를 벌이듯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보다 신이 더 많다는 나라에서. 그중 어떤 신은 마치 개구쟁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타멜을 떠난 우리 일행이 박타푸르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축제로 떠들썩했다. 지진으로 무너졌던 사원들은 깔끔하게 복원이 돼 있었다. 옹기를 굽는 마을을 지나면서 얻어 마신 락시라는 전통술은 심지어 달콤하기까지 했다. 천막 뒤편 목이 잘린 염소를 본 것은 후회되지만. 그 술기운에 취해 네팔 전통악기인 마달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행진하는 주민들을 따라다녔다. 잘 차려입힌 아이들을 안고 걸어가는 여인들의 꽁무니를 쫓느라 겨울인데도 땀을 흘릴 정도였다. 주로 두 팔을 움직여 추는 여인들의 춤사위는 어린 시절 우리네 엄마들이 치마저고리를 입고 췄던 춤과 거의 비슷했다. 그렇게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나온 사람들은 야자수 잎으로 만든 쟁반에 음식이 차려져 있는 박타푸르 광장으로 모였다. 어느새 나는 또 일행들을 잃어버리고 돌 코끼리 옆에 홀로 서서 축제장을 물들이는 여인들의 치맛자락과 옆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배낭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술을 홀짝이며 광장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네팔에서 처음 접하는 축제였다. 신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는 내 고향 대관령에서도 낯선 일이 아니었다. 매년 벌어지는 단오제가 그것이다. 대관령 산신과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낸 뒤 신목(神木)에 성황신을 모시고 단오제가 벌어지는 강릉으로 향한다. 남대천변의 굿당에선 무녀와 악사들이 단오제 내내 20여 석의 굿을 하는데 네팔 못지않게 모시는 신도 다양하다. 조상신, 칠성신, 세존신, 장수신, 성주신, 터주신, 산신, 손님신, 천왕신, 무조신, 용왕신...... 그 굿들을 구경하다 지치면 나는 어김없이 야바위꾼을 찾아가 돈을 걸고 내기를 하다가 모두 털리는 게 일이었다. 다행히 네팔의 축제장에는 야바위꾼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왕의 우유라 불리는 요거트 주주더우(Juju Dhou) 파는 곳을 아냐는 질문에 나를 구부러진 골목 끝으로 데려가 바가지요금을 씌운 한 사내만 만났을 뿐이다. 심지어 그 사내에게 고맙다고 주주더우를 사주기까지 했으니.

상심한 나는 광장을 떠나 터덜터덜 걸었다. 골목의 작은 신전에 모셔 놓은 힌두신이 웃고 있었다. 목에다 코브라를 감고 두 손을 합장한 붉은 얼굴의 신은 끌끌 혀를 찼다. 멀고 먼 대관령에서부터 따라온 성황신도 신목의 가지 같은 내 어깨에 올라앉아 꿀밤을 먹이는 듯했다.
그날 내가 도착한 곳은 언덕 위 허름한 선술집 마당이었다. 주인 여자는 문 옆에서 각종 튀김을 튀기고 장을 보러 왔다가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는 듯한 손님들은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튀김을 먹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생선튀김을 안주로 신주(神酒) 같은 술을 서너 캔 마셨다. 그제야 비로소 내 얼굴에서도 미소가 피어났다. 제법 긴 하루였다.
편집=이화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