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5월 일본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에 위치한 한 라멘 가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들은 한 치의 동요 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심지어 대기 줄조차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점원들이 대피를 시키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담담하게 라멘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기괴함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식당을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은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후였다. ▼‘안전불감증’이라는 비난이 쇄도했지만 이러한 현상은 ‘정상편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으며 화제를 모았었다. 정상편향이란 위험하거나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려는 인간의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평상시와 같은 행동을 해 적절한 대처가 늦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판단이나 신념과는 다르더라도 집단의 의견이나 행동을 따르려는 ‘동조편향’의 경향까지 덧붙여지면 상황은 더 아찔하게 흐른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채해병 사망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실패와 좌절의 쓰라린 경험들은 우리 모두에게 아픈 기억으로 적립되고 있는 중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희망에 대한 의구심은 나날이 커지고 또 켜켜이 쌓여 퇴적되면서 불신사회는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해결하는 방향에서조차 세력에 따라 서로 다른 동조편향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가 문제다. 최근 들어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일들을 접하면 정치의 비루함, 그 끝을 보게 된다. 하기야 필리버스터가 진행 중인 국회 본회의장을 잠으로 채운 국회의원 보유국에서 희망을 논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세력이 정해주는 정의(定義)보다는 정의(正義)를 따르시라 조언 드린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풀섶에 대가리부터 처박는 꿩 같은 모습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현실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이 한심함을 굳이 심리학 용어로 풀이해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