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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159명 사망 이태원참사 부실대응'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1심 무죄

재판부 "업무상 과실·인과관계 엄격히 증명 안돼"…유족 고성 항의

◇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7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2024.10.17 사진=연합뉴스

'핼러윈 데이'인 2022년 10월 29일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광호(60) 전 서울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전 청장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기소된 경찰 간부 중 최고위직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권성수 부장판사)는 17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당직 근무를 해 같은 혐의로 함께 기소된 류미진 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과 정대경 전 112 상황팀장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경찰 등의 대응이 국민의 일반적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이 사건 사고 발생이나 확대와 관련해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이나 인과관계가 엄격히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의 경우 이태원 참사를 구체적으로 예견할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보고서나 문자 메시지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피고인 김광호로서는 2022년 10월 28∼30일 이태원 일대에 다수 인파가 집중될 것이라는 내용을 넘어서 '대규모 인파사고가 발생할 여지도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나 그와 관련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김 전 청장이 핼러윈 축제에 앞서 서울청 내 부서장과 경찰서장 등에게 점검과 대책 마련을 지시한 점을 언급하며 "전체적인 내용과 조치를 보면 합리적 수준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지시에 불과했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고 부연했다.

이어 김 전 청장이 참사 당시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전화 보고를 받아 사고를 인지한 직후 서울청 경비과장에게 가용 부대 급파 지시를 내린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참사 발생 이후 그의 업무상 과실로 사건 사고가 확대됐다고 볼 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22년 10월 29일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 사진=연합뉴스

김 전 청장은 이태원 핼러윈데이 다중 운집 상황으로 인한 사고 위험성을 예견했음에도 적절한 경찰력을 배치하지 않고 지휘·감독 등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않아 참사 당일 사상자 규모를 키운 혐의로 지난 1월 불구속 기소됐다.

치안정감이던 김 전 청장은 이태원 참사 대응과 관련해 징계(정직) 처분을 받음에 따라 지난 6월 의원면직(사직) 처리됐다.

검찰은 김 전 청장에게 금고 5년, 류 전 과장과 정 전 팀장에 대해선 각각 금고 3년, 금고 2년 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류 전 과장과 정 전 팀장의 경우 다중운집 관련 112 신고가 접수되거나 안전사고의 위험이 발생했는데도 제때 위험도에 맞게 대응하지 않은 혐의 등이 있다고 봤지만, 재판부는 이 부분 역시 무죄로 판단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한 혐의로 기소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1심 선고가 열린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김 전 청장의 처벌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2024.10.17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날 재판을 지켜본 유족들은 김 전 청장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고성을 지르며 항의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논평에서 "사법의 역할을 저버린 기만적 판결"이라며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재난 예방과 대응의 책무를 방기해 159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주요 책임자들에 대해 죄를 물어야 함에도 법원은 면죄부를 줬다"며 "법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공직자로서의 책무가 얼마나 무거운지 숙고하고 이를 국가책임자와 사회구성원에게 일깨워 줄 기회를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부실 수사와 법원의 소극적 법 해석으로 참사의 책임자 처벌은 지연됐고 피해자 권리는 또 한 번 침해당했다"며 "검찰은 즉시 수사를 보강해 항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위원장은 이날 선고 후 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법부의 정의를 밝히는 공판이 아니라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며 "'문제는 있어 보이는데 죄는 없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따졌다.

이어 "앞으로도 김광호를 포함한 책임 있는 자들의 모든 책임을 낱낱이 밝히기 위해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 말했다.

◇2022년 10월 29일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거리. 사진=연합뉴스

이에 앞서 이임재(54)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금고 3년을 선고받았다. 박희영(63) 용산구청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함께 기소된 송병주(53)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에게는 금고 2년, 박모 전 112 상황팀장에게는 각각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이 전 서장은 이태원 참사 당일 사고 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고 경비 기동대 배치와 도로 통제 등 조치를 제때 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 등으로 지난해 1월 구속 기소됐다.

또 부실 대응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각을 허위로 기재하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행사)와 국회 청문회에서 참사를 더 늦게 인지한 것처럼 증언하고 서울경찰청에 경비기동대 지원 요청을 지시했다고 허위 증언한 혐의 등(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으로도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 전 서장의 위증 혐의 등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정현우(54) 전 여성청소년과장과 최모 전 생활안전과 경위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박희영 구청장, 유승재 전 용산구 부구청장, 최원준 전 용산구 안전재난과장, 문인환 전 용산구 안전건설교통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들에게는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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