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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언중언]‘악의 평범성’에 대한 서설

인간의 본성과 책임에 대한 질문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와 연결된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의 도구가 되어 잔혹한 행위에 가담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함정으로 작용한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이 개념은 무비판적 복종과 책임 회피가 어떻게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현직 대통령의 반헌법적인 비상계엄 선언과 이를 사유 없이 따른 군과 경찰 지휘부 그리고 탄핵 반대로 국민적 지향을 꺾으려 한 국회의원들의 작태는 악의 평범성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이는 ‘명령에 따른 행동’으로 포장될 수 없다. 스스로 꼭두각시가 되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시민의 자유를 억압한 어리석은 행동에는 엄중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시민 사회 전체가 비판적 사고와 책임 의식을 상실할 때, 악의 평범성은 공동체 전체를 잠식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역사 속에서 수없이 목도해 왔다. 비상계엄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적 절차가 깡그리 무시되고 시민의 기본권이 유린된 상황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들의 행위에 대해 과연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정의로운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맞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권력에 대한 맹목적 복종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판 없는 순응과 맹종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가장 큰 위협이다. 비상계엄에 대한 지지를 넘어 이에 부역한 이들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우리 시민들 또한 내면에 잠재된 복종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한다. 기억하자. 악은 단지 명백한 증오나 경도된 이념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아무런 고민 없이 권위와 억압에 머리를 조아리는 순간, 우리는 모두 악의 평범성이라는 성에 갇힌 채 악의 대리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것은 명백한 민주주의의 적이며,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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