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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AI 저널리즘 리빙랩]돌아오지 못하는 탑들 ④귀향 막던 문화재정책

- ‘보존’의 이름 아래 박제된 귀향의 꿈…지광국사탑처럼 돌아와야 한다
- 일제에서 이식된 ‘문화재 지정주의’의 그림자, 귀향 100년을 가로막다

1912년 원주지역 유물들의 등급을 나눈 목록화(조선 고적조사)작업으로, 우리 문화재 약탈의 기반을 다진 세키노 타다시의 조사는 1916년까지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그 해 조선총독부는 ‘고적 및 유물보존규칙’을 제정, 공표한다. 표면적으로는 문화재 보호를 내세운 법이었지만, 실상은 식민 통치 권력이 문화재를 독점적으로 통제하고 수탈을 용이하게 하는 도구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정5년 조선물산공진회(1915년)’에 징발돼 경복궁 경내에서 조경석 역할을 수행했던 원주탑들은 졸지에 셋방살이 신세로 전락한다. 1933년의 유물의 이동을 엄격하게 제한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까지 추가로 발효되면서 귀향의 꿈은 점점 멀어진다. 일제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문화재를 선별적으로 목록화 해 관리하고,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중앙에 집중시키거나 일본으로 반출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지난해 113년만에 귀향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복원 기념식 모습. 강원일보 DB

이처럼 ‘문화재 조사목록화 작업약탈(징발)소유권 제한(이동 제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문화재 약탈의 빌드업 과정은 상당히 치밀했다. 이후에도 일제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목록화를 광복 전까지 두차례 더 추진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지정문화재 목록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일제가 구축해 놓은, 문화재를 국가가 선별·지정해 보호한다는 ‘지정주의’가 최근까지도 ‘문화재보호법’의 핵심 운영방식으로 고스란히 계승됐다는 것이다. 일제가 그린 설계도를 그대로 가져다 쓴 우리의 문화재 정책 아래에서 원주탑들의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 자리로 돌아감)는 사실상 봉쇄됐던 셈이다. 다행인 것은 문화재보호법을 대신해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문화유산법’이 보존 중심에서 ‘보존+활용’에 방점을 찍고 있는 점이다. 문화유산법 3조(문화유산보호의 기본원칙)는 “문화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지역 역사학계에서는 국보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귀향처럼 제자리를 찾는 것이야말로 원형유지의 시작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광국사탑 환수추진위 대표를 역임한 박순조 전 원주문화원장은 “원주가 문화재를 환수할 정도의 여력을 갖췄는지 자문해 보고, 이를 담을 수 있는 기반시설 확충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며 “남한강 유역 폐사지를 활용한 기념관 건립 등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오석기·허남윤기자

한림대 미디어스쿨=박근영·강세진·임미영·홍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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