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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시대착오적 행정, 원주 ‘아카데미극장’ 사태

구자열 전 강원도지사비서실장

원주시가 결국 일을 저질렀다. 아카데미극장을 지키려던 시민 2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유죄 취지로 실형과 벌금형을 구형했다. 문화유산을 지키겠다고 나선 시민을 범죄자로 만든 것이다. 이게 과연 21세기 대한민국 지방정부의 행정인가.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한 원주의 상징 같은 공간이다. 서울의 단성사, 부산의 국도극장이 그러했듯, 극장 자체가 도시의 기억이자 세대 간의 문화적 연결고리였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했고, 문화재청도 등록 검토를 권고했다. 하지만 원주시는 이를 무시하고 철거를 강행했다. 더 나아가 극장 앞에서 평화적으로 시위하던 시민들을 공무원과 경비 인력을 동원해 밀어냈고, 결국엔 고발까지 이어졌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대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한 것뿐이다.

시민들에 대한 형사 고발은 행정이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했다. 철거업체조차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탄원했지만, 끝내 고발을 철회하지 않은 이는 원주시장이었다. 시민을 적으로 돌리고, 정당한 저항을 범죄로 낙인찍는 이 행태는 과연 법치인가, 아니면 권력을 남용한 폭력인가. 원주시는 왜 법과 절차를 무시했는가. 왜 시민들과 함께 도시의 기억을 지킬 방법을 찾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는 ‘개발’이 아니라 ‘정체성’을, ‘속도’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효율’이 아니라 ‘시민참여’를 요구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서울도, 부산도, 수많은 도시가 오래된 유산을 지키며 재생과 공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혁신을 내세운 원주시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코로나 이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다. 그럼에도 원주의 문화운동가들은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지키려 한 것은 단순한 벽돌 건물이 아니라, 이 도시가 간직한 이야기와 공동체의 정신적 자산이었다. 도시는 기억으로 완성된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에 따라 도시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행정이 기억을 지우고 시민을 밀어내는 순간, 그 도시는 공동체로서 생명을 잃는다.

지금이라도 원주시는 고발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 시민을 상대로 한 형사적 대응은 협박이지 행정이 아니다. 남은 극장 터에서 시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공간의 쓰임을 함께 고민해야 하며, 향후 도시정책에서도 시민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문화자산 보존과 도시개발 사이에 더 나은 해법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 출발점은 독단이 아니라 경청과 협의다.

따라서 아카데미극장 사태는 단순한 갈등이 아니다. 이것은 원주시가 어떤 도시가 될 것인가를 묻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방자치와 균형발전, 그리고 ‘5극3특’ 구상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미래를 공유하는 새로운 국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원주는 그 한 축으로 참여할 기회를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원주시는 그 흐름에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가. 문화유산 앞에서는 무감각하고, 시민의 목소리 앞에서는 냉소적이며, 법치를 앞세운 갈등의 정치에만 몰두한다면, 그것은 행정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거부다. 지역과 시민 없는 정치와 행정은 허상이다. 공동체의 기억을 밀어내는 도시가 어떻게 균형발전의 중심이 될 수 있겠는가. 중심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시민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원주시는 지금 이 순간부터 길을 바꾸고, 정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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