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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압록강 2,000리를 가다]⑦이원삼 조선족 환갑잔치 전승인

조선족문화예술관장 역임…40년간 전통 계승
“모이면 동포” 언어·문자·풍습·예절 등 이어와

◇중국 단둥시에서 조선족 문화의 맥을 이어온 이원삼 환갑잔치 무형문화재 전승인이자 민속고문(전 조선족문화원관장). 중국 단둥=김남덕기자

단둥 시내 한 조선족 식당.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한 이는 이원삼(71) 환갑잔치 무형문화재 전승인이자 민속고문이었다. 중국 단둥에서 40년 넘게 조선족 문화의 맥을 이어온 산증인인 그의 삶에는 여전히 공동체의 기억이 배어 있었다. 1970년대 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내려가 재교육을 받던 시절부터 그는 늘 조선족 공동체와 함께 있었다. 1977년 단둥 시내로 돌아온 뒤에는 새로 문을 연 조선족문화예술관에 몸담아 언어와 문자, 풍습과 예절, 교육과 의례를 지켜내는 일에 평생을 쏟았다. 사라져가는 전통을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처럼 여겨온 그는 지금도 무형문화재 전승 현장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문화의 불씨를 지켜가고 있다.

그가 처음 예술관에 발을 디딘 것은 1979년이다. “당시 단둥시에는 약 1만6,000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었어요. 언어와 문자, 풍습과 예절, 교육과 의례까지 우리 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높았어요. ‘1,000명에 하나씩 문화예술관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원삼 전승인은 판공실 주인으로 시작해 부관장을 거쳐 1985년 관장에 올랐고, 61세에 퇴직할 때까지 16년 동안 예술관을 이끌며 수많은 행사를 기획했다.

◇중국 단둥시에서 조선족 문화의 맥을 이어온 이원삼 환갑잔치 무형문화재 전승인이자 민속고문과 취재진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환갑잔치 전승과 기록 작업이다. 오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전통의 의미를 체계화하고, 후대가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에 큰 자부심을 느꼈어요. 언어, 문자, 풍습, 예절, 교육 등 여러 방면에서 문화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지요” 조선족문화예술관은 단순한 기관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웃고 노래하며 정체성을 확인하는 공간이었다. “조선족 사람들이 갈 데 없으면 이곳에 오고, 모여야 동포가 된다고들 했습니다. 그만큼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어요”

그러나 조선족 사회의 전통도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인구 문제와 현대의 변화 흐름을 비껴가지 못했다. “요즘 수명은 늘어나는데 정작 사람은 줄어는데, 손자·손녀도 줄어들다 보니 예전처럼 온 가족이 모여 잔치를 크게 하기도 어려워졌요. 예전 같으면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나서 도왔는데, 이제는 그럴 인력이 부족합니다. 특히 문화를 연구할 인재들이 부족해서 연변 등 각 지역에서 사람을 모셔와야 하는 어려움이 크죠. 그래서 요즘은 환갑보다는 칠순잔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흐름도 있어요.”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환갑잔치 현장의 중심에 서 있다. 각종 행사 사회를 맡고, 무대 위에서 후배 전승인들을 독려하고 있다. 농촌 마을과 도시 공연장을 오가며 공동체를 잇는 고리 역할을 자처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런 이씨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故 송해 선생님이다. “95세까지 현역으로 무대에 서서 모두에게 행복과 웃음을 전한 송해 선생님이 롤모델이에요. 송해 선생님은 시골에 가도 도시에 가도 환영받았고, 남녀노소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유머와 따뜻함으로 사람들을 묶어주셨어요. 송해 선생님을 보면서 저도 전국을 누비며 동포들에게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

그에게 송해는 단순한 방송인이 아닌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제가 하고 있는 문화 전승도 마찬가지죠. 웃음과 정을 나누면서 이어가야 사람들이 따라옵니다. 저 역시 조선족 사회 속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는 긴 세월 속에서도 전통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묻어났다. 중국 단둥=홍예빈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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