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 서랍이 겹겹이 쌓여 있다
각 칸마다 고리 하나씩,
번호판 대신 긁힌 이니셜 몇 개가
녹 얼룩 아래로 잠겨 있다
병사의 목에서 떨어져 나온 쇳조각들이
차갑게 눕혀져 있고
몇몇은 반으로 끊어져
이빨 자국처럼 울퉁불퉁하다
관리자는 서랍장을 열어
분질 기록과 수거 일지를 대조한다
적힌 이름은 희미하고
철판은 손가락 무늬를 오래 품고 있다
어떤 줄은 낡은 헝겊에 싸여 있고
어떤 줄은 그대로 드러난 채
젖은 것들과 엉켜 있다
쇳소리 같기도, 목걸이 같기도
번호판 없던 고리들이, 서로의 굳힌 자리를 더듬는다
겨울이면 습기가 차오르고
서랍 속 공기가 눅은 빛을 머금는다
표면은 천천히 일어나
녹을 아주 조금씩 밀어 올린다
낡은 형광등 불빛 아래
서랍장은 미세하게 웅웅거린다
잃어버린 이름들이 한꺼번에
부르는 소리 같기도 하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와서
군번줄 하나를 만지자
철 냄새가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냄새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 채
한참을 주머니를 비볐다
밤이 되면
서랍은 저절로 잠긴다
쇠붙이들이 서로 닿아
은은한 울림을 내고
통로 끝 CCTV 화면에는
누군가 열쇠 없이도 들어와
조용히 서랍 앞에 서 있는 장면이
흔적처럼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