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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일반

[신호등]가뭄의 기억

권순찬 강릉 주재 기자

참 특이한 재난이었다. 올 여름 강릉시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강릉 가뭄은 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대형산불 등 여러 사고와 재난을 취재해 본 필자에게 처음 겪는 경험을 다수 선사했다.

물을 받기 위해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 있는 시민들, 생수를 받기 위해 몰려든 차량 등은 전쟁이 났을 때나 볼 것으로 상상했던 장면들이었다. 복구 작업도 필요 없고,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을 일도 없었던 것 역시 기존의 재난과 다른 특이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특이했던 경험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강릉시민들의 성숙한 태도였다. 당연히 가뭄에 불만을 표출하는 시민들도 많았지만 불평만 하기보다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이 훨씬 많았다.

운동을 좋아하던 시민들은 씻는 횟수를 줄이겠다며 운동을 접었고, 강릉 수돗물을 쓰지 않겠다며 주말이면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는 시민들도 있었다. 자영업자들은 정수기 물 대신 생수를 사서 사용했고, 일회용품을 구입해 설거지 물을 아꼈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서로를 위해 불편과 피해를 감수했다.

하지만 좋은 기억만 있을 수는 없다. 강릉 가뭄은 어느 순간 ‘인재(人災)’가 돼있었고, 온라인상에서는 강릉시와 강릉시민을 향해 조롱과 비난이 난무했다. 가뭄 기간 내내 곳곳의 현장을 취재한 입장에서 현장에 있었다면 절대 비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가장 많은 비난은 예견됐던 가뭄을 막기 위한 선제 조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릉시에서는 연곡 지하 저류댐 설치를 이전부터 추진하고 있었고, 지난해 말에는 보조수원 확보를 위한 공사가 시작돼 직접 현장에 나가 취재하기도 했다. 조치를 더 빨리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못된 비난이다.

기우제에 대해서는 ‘요즘 같은 시대에 기우제가 웬말이냐’며 조롱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가뭄 피해를 직접 겪고 있던 강릉시민들에게 기우제는 ‘절실함의 표현’이었다. 비와 상극인 어업인들마저 기우제를 지냈을 정도니 그 절실함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할 수 있다.

공무원들을 향한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아파트 대수용가 단수가 시행됐을 당시 강릉시청은 단수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강릉시청은 가뭄 사태 한참 전부터 제한급수를 시행 중이었다. 공무원들은 시민들보다 먼저 물 부족의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단수로 어려움을 겪은 시민들의 고통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공무원들 역시 물이 끊긴 아파트에 거주하는 시민들이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강릉 가뭄을 결코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계속된 야근으로 입술이 터진 공무원, 머리 감을 물도 아끼겠다며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시민, 더운 날씨에도 절실하게 기우제를 지내던 고령의 유림들이 현장에서 바라본 필자가 기억하는 가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가뭄 사태가 끝난 지 두 달이나 지났지만 뒤늦게나마 어려움을 함께 이겨낸 강릉시민들과 불철주야 고생한 공무원들께 고생 많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아울러 반복되는 재난은 인재인 만큼 강릉시는 가뭄 대책을 더욱 철저히 준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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