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을 해 내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그 집중력을 발휘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고향인 영월에서 받은 것 같아요. 제가 태어나고 성장한 그 곳, 고향이 제게 준 선물이죠"
고향 얘기를 꺼내니 함영빈 (주)함창 대표의 얼굴에 언뜻 장난스러운 미소가 스쳤다. 험난한 중동시장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해수 담수화 플랜트 사업을 한치의 오차 없이 수행한 글로벌 중견기업의 대표가 고향의 산과 들을 자유롭게 뛰놀던 '영월 소년'으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명품 플랜트' 건설기업으로 해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주)함창의 함영빈 대표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주)함창에서 만났다.
■ 영월 출신으로 경기 안산에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강원도민들께 소개 부탁드린다="영월 상동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고교를 졸업 때까지 영월에서 살다가 안산으로 넘어왔다. 1988년 부친께서 창업을 했는데 당시 안산에 국내 최대 산업클러스터가 조성되던 시기였다. 창업을 하기에 최적의 입지였다. 아버지께서 기반을 닦았고, 제가 경영혁신을 더하면서 현재의 (주)함창이 됐다"
■ 중소기업이 중동에 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우리나라 기업 10개가 중동에 진출하면 거의 9개는 실패한다고 봐야 한다. 특히 전쟁 등 큰 리스크가 많고, 국가마다 정책이 빠르게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동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들의 간접비용이 상당히 확대되고 있고, 이는 고스란히 기업에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철저한 현지화로 이를 극복했다. 제품을 만들어서 납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동 현지에서 건설· 시공을 직접 한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의 공사를 했지만 지금은 세계 최대 규모의 플랜트 사업을 할 정도로 업계의 신뢰를 받고 있다. 중동 진출 직후부터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다국적 글로벌 스탭들이 탄탄하게 조직을 이끌고 있고, 이들이 갖고 있는 현지 노하우와 기술력이 우리의 큰 자산이다. 그래서 주변 지정학적 리스크나 인건비 상승, 갑작스러운 변화에 잘 대처가 된다"
■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설명 부탁드린다="단연 'UAE 아부다비 S2 해수담수화 프로젝트'다. 단일 설비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말 그대로 기술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현장이었다. 우리는 치밀한 공정 관리와 신 공법을 통해 당초 계획보다 공기를 무려 3개월이나 단축 시켰다. 플랜트 사업에서 3개월의 조기 완공은 발주처에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익을 선물하는 것과 같다.
이 경험을 통해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을 때 비로소 진정한 파트너가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발주처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완벽한 품질로 화답했기에, (주)함창은 중동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 비결은 무엇인가="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책임감이다. 고객들에게 우리는 두 가지를 확실하게 약속한다. 철저한 공정 준수와 완벽한 품질 확보다. 돌발 변수가 많은 해외 현장이지만 밤을 새워서라도 납기를 맞추고 작은 결함을 허용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우리만의 방식이 쌓이면서 '함창에 일을 맡기면 틀림없다'는 무형의 신뢰자본이 형성됐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약속한 준공시기를 어긴적이 없다"
■ 사업 다각화를 위해 국내 자동차 부품시장 등에도 진출했다고 들었다="배가 멀리 항해하려면 큰 돛도 필요하지만 중심을 잡아주는 평형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외 플랜트 사업이 회사를 이끄는 돛이라면 자동차 부품 사업은 평형수 역할이다.
사실 중동에서 하는 플랜트 사업은 수주 사업이다. 고객의 수요에 따라 매출이 불규칙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회사 경영적 측면에서는 안정적인 매출을 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자동차 부품 제조업이다. 진입 장벽이 굉장히 높지만 뿌리산업이라 한번 자리 잡으면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글로벌 프로젝트와 안정적 제조기반이라는 상호보완적인 최적의 사업 구조를 갖추게 된 셈이다"
■ 이른바 '2세 경영인'이지만 (주)함창의 가장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대표 자리에 올랐다="1997년 사원으로 입사했다. 주임, 대리, 과장, 부장, 전무, 이사 등을 모두 거쳤는데 회사가 정해 놓은 직급별 기간을 모두 채우고 2018년에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당시에는 힘든 마음에 불평도 많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밑바닥에서부터의 수업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다. 현장에서 직접 실무를 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경험이 이제는 경영자로서 직원들과 소통하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하는데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교과서가 됐다"
■ 직원 채용에 남다른 기준이 있다고 들었는데="스펙보다는 그 사람의 '스토리'를 중요시한다. 화려한 스펙은 과거를 보여주지만 올바른 마음가짐과 나만의 스토리는 그 사람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채용과정에서 스펙은 좀 부족해 보여도 긍정적인 사고와 건강한 열정을 가진 인재를 뽑았을 때 결과가 훨씬 좋았다. 기술은 회사에서 코칭을 하면 금방 배운다. 하지만 일과 동료를 대하는 진정성은 가르쳐서 되는게 아니다. 지금의 (주)함창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장기 근속자들, 핵심직원들을 보면 하나같이 스펙보다는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가진 분들인거 같다. 그런 분들이 더 큰 성과를 내고, 오랫동안 회사와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고향을 위해 다양한 활동도 하고 있다="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기였는데 어려운 상황이다보니 우리 고향은 더욱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도권에 있는 고향 출신 젊은 사업가들을 찾아 모임을 하나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 때 만든게 '수도권 영월경영인포럼'이다. 모임을 하면서 모인 회비를 전액 고향에 전달하고 있다. 주로 행정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에게 지원을 한다. 처음에는 직접 수소문을 하기도 하고 이장님을 통해서 추천도 받았다. 상동고 같은 경우 야구 특화 학교인데 후원을 많이 했다. 고향사랑기부제에도 적극 참여한다. (주)함창이 있는 안산에서도 여러 후원활동을 하고 있다"
■ 고향인 영월은 대표님에게 어떤 의미인가="단단한 뿌리와 같다. 힘들때마다 저를 지탱해주는 '무한한 에너지의 원천'이다.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장점들은 고향이 나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그 곳의 물과 산, 맑은 공기 같은 것들이 지금 '함영빈'이라는 사람의 많은 것들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때는 부족함이라고 느꼈던 것들이 성인이 된 후 사회에 나와보니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내면의 자산이었음을 깨달았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저의 경영 스타일은 모두 그 시절 고향이 제게 가르쳐 준 선물이다.
추워서 동상에 걸렸어도 친구들과 얼음 위에서 썰매 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고향이 발전했으면 좋겠고, 고향에 계시는 분들의 생활도 좀 더 윤택해 졌으면 좋겠다"
안산=원선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