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증시 부양책으로 공언했던 '오천피'(코스피 5,000) 시대가 드디어 열렸다. 한국 증시가 태동한 지 70년 만이다.
22일 오전 9시 1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장 시작과 함께 전장보다 77.13포인트(1.57%) 오른 4,987.06으로 출발한 뒤, 오전 9시 14분 미국의 유럽에 대한 관세 철회 소식에 빠르게 상승폭을 키우며 5,002.02로 사상 처음 5,000 고지를 돌파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사상 처음 4,000선을 돌파한 지 3개월 만에 '꿈의 지수'로 불렸던 '오천피' 시대를 열게 됐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4.3원 내린 1,467.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이 4천65억원 순매수하며 지수를 끌어 올리고 있다.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천874억원, 2천204억원 순매도 중이다.
외국인은 코스피200선물시장에서도 447억원 '팔자'를 나타내고 있다.
간밤 뉴욕증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유럽 8개국에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철회하자 3대 지수가 일제히 올랐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가 1.21% 올랐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각각 1.16%, 1.18%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마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가진 결과 그린란드와 북극 지역 전체에 대한 미래 협정의 틀을 마련했다"며 "유럽 8개국에 2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린란드 병합 문제와 관련해 무력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지정학적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엔비디아(2.95%), 마이크론(6.61%) 등이 오르면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3.18% 뛰었다.
이에 국내 증시도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유럽이 강대강 국면에서 한발 물러나, 협상 모드로 전환한 점이 긍정적"이라며 "오늘 국내 증시는 미국 증시의 상승 온기를 이어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 삼성전자(4.48%)가 15만7천원을 터치하며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으며, SK하이닉스(4.19%)도 급등 중이다.
아울러 현대차(5.10%)도 59만원까지 올라 사상 최고가를 또 경신했으며, LG에너지솔루션(2.15%), 기아(0.70%), 두산에너빌리티(2.30%), SK스퀘어(3.49%) 등도 강세다.
반면 지정학적 긴장 완화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2.13%) 등 방산주는 하락 중이며, 삼성바이오로직스(-3.84%), HD현대중공업(-0.16%) 등도 약세다.
업종별로 보면 전기전자(3.70%), 증권(2.68%), 운송창고(3.11%) 등이 오르고 있으며 제약(-1.86%), 전기가스(-1.06%) 등은 하락 중이다.
같은 시각 코스닥지수도 전장보다 7.81포인트(0.82%) 오른 959.10이다.
지수는 전장보다 12.48포인트(1.31%) 오른 963.77로 출발해 상승폭을 줄이고 있다.
코스닥시장에서 개인이 2천120억원 순매수하고 있으며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천323억원, 733억원 매도 우위다.
전날 급락했던 알테오젠(0.54%)이 반등 중이며, 에코프로비엠(5.81%), 에코프로(4.63%), HLB(2.39%), 삼천당제약(3.57%) 등도 오르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1.56%), 펩트론(-0.94%), 리노공업(-0.31%) 등은 하락 중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꿈의 지수'가 어느덧 현실이 되기까지 한국 증시는 굴곡의 여정을 거듭했지만, 위기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한국 유가증권시장의 뿌리는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 출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53년 11월 설립된 대한증권업협회가 주식시장 개설을 추진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증권거래소가 태동했다.
당시 한국 증시의 상장사는 12개에 불과했다
조흥은행, 저축은행, 한국상업은행, 흥업은행 등 4개 은행과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등 일반기업 6곳, 정책적 목적으로 상장된 대한증권거래소와 한국연합증권금융뿐이었다.
현재처럼 전산 처리가 어려웠던 당시엔 대리인의 손짓과 목소리로 호가와 수량이 제시되는 원시적인 방식으로 증권매매가 이뤄졌다.
첫해 거래규모는 오늘날 화폐단위로 환산할 때 주식 3억9천만원에 불과했다.
12개로 출발한 상장사는 1973년 처음으로 100개를 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유가증권시장 843개사·코스닥 1천816개사 등 2천659사로 늘어났다.
개장 첫해 150억원에 불과했던 시가총액은 1월 16일 코스피로만 따지면 4천조원을 처음으로 넘었다.
코스닥시장까지 합산하면 4천518조1천984억원으로 약 30만배로 늘어났다.
거래소 문을 열었던 상장사 상당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한증권거래소와 한국연합증권금융은 각각 1974년 6월과 11월에 상장폐지됐고, 4개 은행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후 금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모두 상장폐지 수순을 밟았다.
경성전기와 남선전기는 조선전업과 함께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합되면서 1961년 6월 상장사 명단에서 사라졌고, 조선운수는 대한통운의 전신인 한국미곡창고에 합병돼 1962년 1월 상장폐지 됐다.
대한해운공사와 조선공사는 한진그룹에 넘어가 각각 한진해운과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고, 한진해운은 법원의 파산 선고로 2017년 상장폐지됐다.
경성방직은 1970년 경방으로 변경해 여전히 증시에서 거래 중이다.
증권시장이 본격적으로 기틀은 닦은 것은 정부가 증권시장의 발전을 위해 1962년 1월 증권거래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1961년 4억원에 불과했던 주식거래 대금은 이듬해 1천억원 수준까지 치솟았으나 1962년 5월의 '증권 파동' 때 첫 위기가 찾아왔다.
시장의 급격한 팽창을 노린 투기세력으로 인해 거래소가 지급 불능에 빠진 것이다.
당시 주식회사 거래소가 부도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투자자가 속출하고 시장도 장기간 휴장에 들어가는 등 파장이 컸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되살리고자 1968년 자본시장육성 특별법과 1972년 기업공개촉진법 등을 제정하면서 1970년대엔 기업들의 '상장 러시'가 이뤄졌다.
코스피는 1983년 1월 4일 122.52로 처음 공표됐다. 이 지수는 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을 기준(100)으로 처음 산출된 것이다.
1989년 3월31일 최초로 1,000을 돌파하며 '네자릿수 지수'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는 서울 아시안게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며 유가·금리·달러 등 이른바 '3저 효과'와 국민주 보급 등에 힘입어 주식 대중화가 진행된 시기다. 1992년 외국인 직접 투자가 전면 허용되면서 세계로 나온 국내 주식시장은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이듬해 6월16일 277.37까지 추락하고 굵직한 기업이 줄줄이 상장폐지되는 등 크게 휘청였다.
이후 구조조정과 제도 정비로 체질을 개선하고 정부기술(IT) 투자 열풍을 바탕으로 반등해 1999년 1,000선을 되찾았지만, IT 거품 붕괴와 건설경기 과열 후유증, 9·11테러로 다시 400선까지 떨어졌다.
2007년 7월 급속한 경제 회복과 펀드 투자 열풍 등에 힘입어 2,000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삼천피' 기대가 불어오기도 잠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다시 1,000선 밑으로 떨어졌다.
2017년 세계 반도체 경기 호황에 힘입어 2,500선을 넘어서기도 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촉발한 미중 무역갈등 등 여파로 다시 하락세가 시작됐다.
2020년 3월 들어서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1,500선까지 추락했다가 개인 매수세가 유입된 '동학개미운동'과 전 세계 초저금리 정책에 따른 경기 부양 기조로 다시 급반등해 2021년 1월 '삼천피'에 도달했다.
2024년 말 비상계엄 여파 등으로 2,399.49로 마감했던 코스피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증시 부양책 기대로 분위기가 반전되며 작년 6월 3,000을 회복했고 10월27일 '4,000 시대'에 진입했다.
지난 한 해 동안 75.9% 오른 코스피는 새해 들어서도 상승 동력을 유지하며 이날 5,000선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오기형 위원장을 포함한 특위 소속 위원들과 오찬을 한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코스피 5,000 시대'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에 이 대통령은 특위 위원들과 코스피 5,000 달성을 자축하고, '반짝 상승'에 그치지 않도록 앞으로도 주식시장 활성화에 힘써 달라고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전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주식이 저평가되는 것은 한반도 평화 리스크와 기업 지배구조 리스크, 주가조작 같은 시장 리스크, 정치 리스크 때문"이라며 "지금은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 정착과 기업 경영 투명화를 위한 제도 개선, 주가조작 근절 등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