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베트남 방문 중 건강이 악화돼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아온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끝내 별세했다. 향년 73세.
민주평통에 따르면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평통 아태지역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이던 지난 23일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지 이틀만인 이날 오후 2시 48분(현지시간)께 숨을 거뒀다.
이 수석부의장은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현지 의료진으로부터 스텐트 시술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이 수석부의장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6선의 조정식 정무특보를 베트남 현지로 급파했다. 이재정·김영배·김현·이해식·최민희 의원 등 그와 가까운 민주당 의원들도 잇따라 현지로 향했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 수석부의장의 시신은 26일 밤 대한항공편으로 현지를 떠나 27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운구될 예정이다. 고인은 현재 베트남의 한 군 병원에 임시 안치돼 있다.
민주평통은 유족 및 관계기관과 장례 절차를 협의 중이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덕수중·용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1973년 10월 교내 유인물 사건에 연루돼 수배됐고, 이듬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 이후 민주화 운동에 몸을 바쳤다.
출소 후에는 서울대 인근에 책방 '광장서적'을 개업하고, 출판사 '돌베개'를 설립하는 등 재야에서 운동을 이어갔다.
1980년 대학에 돌아온 그는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다 그해 6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고, 2년 만에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후 재야 입당파들과 평화민주당에 입당,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해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만 13대 총선부터 17대까지 내리 5선을 했다. 이후 지역구를 세종시로 옮겨 19·20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1995년), 교육부 장관(1998년), 국무총리(2004년)까지 지방자치와 제도권 정치의 정점을 모두 경험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교육 개혁을 진두지휘했지만, '학교 교육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학력 저하 논란을 낳아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국무총리에 취임해 노무현 대통령과 긴밀히 소통하며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등 '책임총리제'를 정착시켰다.
여의도 정치 무대에서는 대선과 총선 때마다 기획·정책을 맡았다.
소속 정당이 여야를 오가는 동안 총 세 차례 정책위원회의장을 지내는 등 민주 진영의 전략 기획가로 활약해 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2020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낼 때는 '민주당 20년 집권계획'을 역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각별한 정치적 동지로 지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14∼2018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2020년 21대 총선의 압승을 이끌었다. 2020년 당 대표 임기 종료 후에는 여의도 정치 일선에서 은퇴하고 동북아평화경제협의회 이사장을 맡았다. 지난해 10월 이재명 정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다.
정치권에서는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민주 세대의 대표적 인물로, 군사정권과 민주화 이후를 모두 경험하고 목도한 민주 세력의 상징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민주화 운동 세대 가운데서도 고(故) 김근태 전 장관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과 현실 제도권 정치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간 정치인으로 꼽힌다. 소신과 추진력이 강한 동시에 독선적이고 깐깐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 수석부의장은 국무총리 시절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과 거침없는 설전을 마다하지 않아 '버럭 해찬' '호통 총리'로도 이름을 날렸다.
2004년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안택수 의원의 질문 공세에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고 받아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답변에 안 의원이 사퇴를 요구하자 이 수석부의장은 "내가 안 의원의 주장에 거취를 결정할 사람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2006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국무총리와 법무부 장관이 여당 당원인데 공정한 선거 관리가 되겠느냐"고 묻자 그는 "홍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했지만 저는 5번의 선거에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맞받았다.
이 수석부의장은 2018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예비경선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총리 때 대정부질문에서 받았던 야당의 질의가 상식 이하였다"며 "그것을 다 수용하는 것은 협치가 아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에 야권에서는 소통과 협치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난받았지만 여권에서는 할 말은 하는 '사이다 총리'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효능감을 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고인은 이 같은 거침없는 발언으로 종종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 생방송으로 진행된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인터뷰를 계속 이렇게 하실 겁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2017년 대선 당시 "극우 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하거나 2018년 민주당 대표에 출마하며 이른바 '20년 집권론'을 꺼내 들어 야권의 반발을 샀다. 2020년 민주당 당 대표 시절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를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박 전 시장의 빈소에서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 대응을 질문하는 기자에게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는 것인가. 최소한 가릴 게 있다"고 화를 내는 모습도 보였다.
이 수석부의장은 골프와의 악연도 깊다.
그는 2004년 9월 군부대 오발 사고 희생자를 조문하러 가기 직전, 2005년 4월 강원도 동해안 대형산불이 발생한 시기에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이후 2006년 '3·1절 골프 파문'으로 쏟아지는 비난에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 수석부의장의 별세에 "대한민국의 민주화, 그리고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라는 거대한 꿈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었다"고 추모했다.
강 실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같이 전하며 "그 꿈을 향해 걸어오신 모든 길이 역사가 됐다"고 적었다.
이어 "비서실장이 된 이후 이 전 총리님이 하셨던 말들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많다"며 "결국 정치는 사람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실을 고민하셨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 총리님 삶을 관통하던 이 한 문장을 저 역시 가슴에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강 실장은 또 이 전 총리가 생전 마지막 회고록에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이제 조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문장을 적었다고 소개하면서 "그 마음을 헤아리며 슬픔과 황망함을 달래본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은 25일 국무총리를 지낸 이 수석부의장의 별세에 "우리는 한 사람의 정치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민주주의를 함께 보내고 있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반세기의 한 축을 이뤄온 이해찬 전 국무총리님의 서거에 깊은 슬픔과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이 전 총리님은 민주정부 수립과 민주정당의 성장을 위해 평생을 바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산증인이자 거목"이라며 "이 전 총리님은 늘 민주주의를 이상이 아닌 '지켜내고, 발전시켜야 할 현실'로 받아들였던 정치인"이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이 전 총리께서 남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국민주권에 대한 확신, 그리고 민주정부의 책임에 대한 철학은 여전히 국민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민주화운동과 민주당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고인의 뜻과 발자취를 늘 기억하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김한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도 "2018년 여의도에 처음 들어와서 당 대표님으로 모신 분이어서 제게는 특별했다"며 "그래서 그 이후에도 가끔 따로 뵙고 고견을 청해 들었다"고 떠올렸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고인의 곁을 지켰던 최민희 의원은 "평생동안 민주화와 민주정부를 위해 헌신하신 총리님, 훌훌 털고 편안히 영면하시라"며 "감사했고 진정으로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하겠다"고 했다.
조국혁신당도 고인의 별세 소식에 애도를 표했다.
박병언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고인께서는 박정희 군부독재에 맞서 활동하다 투옥된 이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줄곧 헌신해 오셨다"며 "올바름을 위해 고난을 피하지 않았던 생의 모습을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도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또 "당은 고인께서 평생 보여주신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정치적 단결,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다시 되새기며 유지를 따라 실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조국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추모의 뜻을 밝혔다.
그는 "2019년 제가 독화살을 맞던 시간, 단호한 어조로 사태의 본질을 말씀하시며 흔들리지 말고 마음 굳게 먹으라고 당부하셨다. 꽉 잡아주시던 그 손을 잊지 못한다"고 회상했다.
이어 "가르쳐주신 대로, 남겨주신 발자국을 기억하며 살겠다. 당신의 치열함과 치밀함을 늘 새기겠다"고 덧붙였다.
민주평통은 현재 유가족이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 운구 및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김정옥 씨와 딸 현주 씨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