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묵호(墨湖)는 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 망상면 묵호진리로 동해안의 작은 어촌이었다. 1942년 강릉군 망상면이 묵호읍으로 승격되면서 항구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강릉이 시로 승격되면서 명주군에 속했던 묵호읍은 1980년 삼척군 북평읍과 함께 동해시로 되었다. 그 뒤 동해시 묵호동이 되었다. ▼1936년부터 삼척지역 일대의 무연탄을 실어 나르던 작은 항구 묵호항은 1941년 국제무역항으로 몸집이 커지더니 1976년에 이르러 대규모 확장공사를 통해 석탄 하역시설과 부두, 방파제 등의 보강이 이뤄졌다. 당시만 해도 국내 최대 규모의 무연탄·시멘트 수출항으로 이름을 날리던 묵호항은 1979년 동해항 개항과 함께 그 역할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명태 어획량도 급감했다. 한때 번성했던 도시들마다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개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묵호에도 전해져 왔다. 그러나 묵호항의 쇠락과 함께 수산물을 실어 나르며 질척이던 도로에는 먼지가 풀썩였다. ▼전형적인 어촌마을을 체류형 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도전에 동해시가 나섰다. 묵호등대로 올라가는, 고단한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골목길인 논골담길에 10여년간 110여개의 벽화를 입혀 묵호의 옛 생활상과 사람들의 기억, 희망을 그렸다. 산비탈에는 산책로를 개설, 탁 트인 동해바다를 옛 기억과 함께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코로나19 위기에도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를 개장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저력을 보였다. 묵호등대 논골담길 축제 등 지역 주민 참여형 축제로 전설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에 KTX가 개통되며 최근 캐리어를 끌고 묵호역에 내리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입소문 난 음식점에 웨이팅이 이뤄지고 카페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개업하고 있다. ‘하평 해변’과 ‘어달 삼거리’에는 인생사진을 찍기 위한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이 같은 열기가 잠깐에 그치지 않고 계속될 수 있도록 시민들과 동해시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