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용 한림대명예교수가 기다림의 상징에서 주체적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난 여성 서사를 그린 장편소설 ‘소양강 처녀’를 상재했다.
이 소설은 국민 애창곡 ‘소양강 처녀’에서 나오는 수동적인 여성상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시작된다. 저자는 노래 속 “가슴에 멍이 들고 애만 태우는” 여인은 성평등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의 가치와 맞지 않음을 지적한다. 대신 춘천 의암호에 우뚝 선 처녀상에 ‘주체적인 영혼’을 불어넣어, 1960년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당찬 여성 ‘아란’을 탄생시켰다.
소설의 배경은 댐 건설과 다리 공사로 지형과 생활상이 급격히 바뀌던 1960년대 춘성군 서면(현 춘천시)이다. 주인공 아란은 아버지를 대신해 노를 젓는 뱃사공이다. 그녀는 겉치장보다는 내면의 신념과 이웃을 향한 배려를 중시하는 ‘진짜 아름다움’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작품의 백미는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미국으로 떠나자고 했을 때, 아란이 반토막 인생을 살 수 없다면서 제안을 거절하는 대목이다. 이는 자신의 터전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고, 뜻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아니오’라고 말하는 주체적 인간 선언이다.
소설은 아란의 이야기와 함께, 기술직 청년 ‘찬슬’의 성장담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균형을 맞춘다.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업했지만, 찬슬은 퇴근 후에도 밤늦게까지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지독한 노력파다. “대학 출신은 아니지만 국제기능올림픽 메달 수상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연구센터로 발탁되는 찬슬의 서사는, 1960년대 산업화 태동기 속에서 배경이 아닌 실력으로 미래를 개척했던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아란이 성별의 고정관념을 깼다면, 찬슬은 학벌과 배경의 장벽을 넘어서며 독자들에게 뭉클한 희망을 전한다.
여기에 아란과 협력해 고향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한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소설은 더욱 풍성해진다. 한들은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도 고향을 지키며 공동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아란, 찬슬과 함께 변화의 물결 속에서 희망과 사랑을 쌓아가는 젊은이들의 건강한 에너지를 보여준다. 김명예교수는 “나는 이 소설에서 하염없이 서 있는 소양강 처녀상에 영혼을 넣어주고 싶었다”며 “진정한 성평등을 이루려면 제도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의 전통적 남녀관이 변해야 한다. 독자들이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춘천 여성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푸른사상 刊, 316쪽, 2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