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여름작형 애호박과 오이가 본격 출하에 들어갔지만 가격이 반토막 나면서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중동전쟁 여파로 난방비와 비료값 등 생산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출하 초반부터 가격까지 급락하며 농민들이 이중고에 내몰리고 있다.
애호박 전국 최대 주산지인 화천에서 농사를 짓는 김종철(60)씨는 최근 가락동 도매시장 시세를 확인한 뒤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8,000원~1만원에 형성됐던 애호박 한 박스(20개입) 가격이 올해는 6,000원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박스값, 운송비, 비료값 등을 제외하고 남은 순수익이 박스당 3,000원으로 개당 150원을 겨우 남긴다”고 막막해했다. 화천지역 농민들은 가격 하락이 계속될 경우 코로나19 여파로 애호박을 트랙터로 갈아엎으며 산지 폐기에 나섰던 2021년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부 농민들은 산지폐기를 피하기 위해 헐값 판매까지 나서고 있다. 춘천시 북산면에서 농사를 짓는 안정자(69)씨는 매일 출하하는 오이 450개와 애호박 150개를 처리하기 위해 최근 지역먹거리 직매장에서 개당 200원에 할인 판매를 진행했다. 안씨는 “올해 비닐하우스 난방비, 비료값 등 생산비는 올랐는데 정작 농산물 가격이 떨어졌다. 물량 소화를 위해 헐값에 팔기까지 해서 속이 쓰리다”고 했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2일 기준 애호박 한 박스 평균 가격은 1만2,863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시기 2만6,256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절반 이하로 추락한 수준이다. 더욱이 이는 특상 등급 기준으로, 일반 농가가 출하하는 물량은 등급에 따라 7,500원 이하에도 거래되고 있다. 백다다기오이 가격 역시 지난해 1만8,211원에서 올해 1만435원으로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가격 하락의 원인으로 재배지 확대로 인한 수확량 증가를 지목했다. 경기 양주, 충남 천안, 강원 홍천 등에서 애호박으로 작목을 변경한 농가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초 강수량이 적고 일조량이 풍부한 날씨로 작황이 양호했고 그 결과 6월 출하량이 지난해 대비 6.7% 늘었다.
최선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과채관측팀장은 “7월 장마 양상이 애호박·오이 가격 흐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온의 마른장마가 이어져 출하 물량이 지금처럼 유지될 경우 가격이 박스당 2,000원대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어 모니터링 및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