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복귀·사직처리 요청 불응 전공의 4천716명 내년 3월 동일 전공·연차 복귀 불가

복지부 "정부 손 떠나…사직 여부 병원-전공의 계약 관계"
사직처리·전공의 모집 미신청 수련병원 전공의 정원 축소
하반기 전공의 모집·국시 접수 하루 앞…현장에선 회의적

사진=연합뉴스

속보=수련병원들이 정부 요청에 따라 이탈 전공의들을 사직처리하고 9월 전공의 모집 신청 인원을 정부에 제출한 가운데, 전체 전공의 1만4천531명 중 4천716명의 이탈 전공의가 복귀나 사직처리 요청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탈 전공의에 대해 처벌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이들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가 17일까지 각 수련병원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에 대한 사직 처리와 가을 전공의 모집인원 신청을 해달라고 요청한 결과 전공의를 채용한 151개 병원 중 110개 병원에서 사직처리 결과를 제출했고, 7천648명이 사직(임용포기 포함)처리됐다. 수련병원들은 사직 처리된 전공의 수보다 많은 7천707명을 하반기 모집하겠다고 신청했다.

인턴의 경우 임용대상자 3천68명의 96.2%인 2천950명이 사직했고, 레지던트는 1만463명의 44.9%인 4천698명이 사직했다.

전공의들이 복귀와 사직 중 선택해달라는 수련병원 측의 연락을 피하거나, 수련병원 차원에서 사직처리 결과 통보 요청에 응하지 않은 경우다.

반면 근무 중인 전공의는 17일 오전 11시 기준 1천167명이다.

전공의들은 2월 말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이탈한 이후 정부에 사직서를 수리해달라고 요청해왔으나, 정부가 면허정지 행정처분 철회 등의 조치와 함께 수리하겠다고 방침을 바꾼 뒤에는 사직서 수리를 거부해왔다.

행정처분을 철회가 아닌 '취소'하고, 사직 처리 시점을 6월 이후가 아닌 2월로 해달라는 것이 요구사항이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계속 버틸 경우 정부가 결국 기존 방침을 바꿔 '내년 3월 동일 전공·연차 복귀'를 허용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런 전공의들과 의료계의 주장에 일부 병원이 동의하기도 했다. 전공의를 채용한 151개 병원 중 41개 병원은 사직처리 결과를 복지부에 제출하지 않으며 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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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부 전공의들이 복귀도, 사직도 안 한 채 '이탈 전공의'로 남게 된 것과 관련해 정부는 "처분 여부가 이미 정부의 손을 떠났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명령을 철회하고 처분하지 않기로 했으며, 사직자에게는 9월 복귀의 길까지 열어줬다"며 "사직을 허용했지만 수련병원이 사직 처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사직 여부 등 계약 관계는 병원과 전공의 사이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행정처분을 철회하겠다고 결단을 내린 상황에서 더는 줄 불이익도, 복귀나 사직으로 이끌 유인책도 없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9월 복귀자에 대해 어떤 배려를 할지 충분히 설명했고, 복귀·사직을 안 하면 어떤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지도 적극적으로 알렸다"며 "그간 밝혔던 대로 '내년 3월 동일 전공·연차 복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귀와 사직을 모두 거부한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에 적을 두고 있어서 다른 병원에 취직하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이들 가운데 병역 대상자는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등록돼 있기 때문에 입대해야 할 상황이다. 의사들은 인턴 때 군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등록해야 하는데, 이 경우 복무 기간이 짧은 일반병사가 아닌, 군의관,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등으로 군 복무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들뿐 아니라 사직 후 9월에 수련병원에 돌아오지 않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입대해야 하는데, 한해 군의관이나 공보의로 복무를 시작할 인원이 정해져 있는 만큼 입대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

복지부는 이와 함께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직처리 결과를 제출하지 않은 41개 수련병원, 혹은 전공의 사직처리에 소극적인 수련병원에 대해 어떤 불이익을 줄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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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당초 밝혔던 대로 이탈 전공의에 비해 사직자가 지나치게 적거나, 사직 처리결과나 9월 모집 신청을 하지 않은 수련병원에 대해서는 내년 3월 모집 때부터 전공의 정원(TO)을 축소할 방침이다.

TO가 줄어들면 전공의들이 뒤늦게 복귀하려고 해도 돌아올 자리 자체가 적어질 수 있다.

비상진료로 병원에 투입하는 예비비나 건강보험 청구액 선지급 등의 혜택을 줄이거나, 연구개발 비용을 삭감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편, 올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과 의사 국가시험 접수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으나 현장에서는 하반기 모집에 지원하는 전공의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시작 전부터 회의적인 기색이 역력하다.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을 포함해 대부분의 수련병원이 오는 22일부터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일정을 개시한다.

이달 말까지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을 받은 후 다음 달에는 병원별로 면접 등 채용 절차가 진행된다. 최종 합격자들은 9월 1일부터 수련에 들어간다.

애초 전공의들은 수련 도중 사직 시 '일 년 내 동일 과목과 연차'에 복귀할 수 없게 돼 있으나, 올해 9월에 복귀하는 사직 전공의는 예외다.

정부는 이들에게 수련 특례를 적용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수련 특례는 올해 9월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에 복귀하지 않는 사직 전공의는 빨라야 내년 9월에나 수련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직서가 '2월 29일 자'로 수리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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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서는 2월 기준으로 사직이 처리된 전공의들은 일 년 후인 내년 3월에 복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내놓지만, 정부는 여전히 사직의 법적 효력은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이 철회된 6월 4일 이후에 발생한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 역시 "정부에 따르면 (사직의) 공법상 효력은 6월 이후에 적용되므로 이번 9월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복귀할 수 있는 시기는 내년 6월 이후가 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사직 전공의들은 복귀 시점이나 전문의 자격 취득 등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올해 9월에 복귀하는 게 최선이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사직 전공의들은 9월 하반기 모집에 지원해 복귀하기보다는 일반의로 병·의원에 취업하거나, 입대나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사직 전공의는 "정부가 전공의를 쫓아낸 거나 다름없으니 복귀할 계획은 당연히 없고 더 이상 할 말도 없다"며 "내년에 군에 입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도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지원하는 전공의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는다.

서울시내 수련병원 관계자는 "하반기 모집이 전공의들 사이에선 '갈라치기'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여서 지원 자체가 많지 않을 수 있다"며 "교수들의 반발도 여전한 편"이라고 전했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과 같은 날 응시 접수가 시작되는 국시도 파행이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의사 면허를 취득하려면 9∼11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국시 실기와 이듬해 1월 필기에 모두 합격해야 한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은 22일부터 26일까지 의사 국시 실기시험을 접수하지만, 내년도 국시를 치러야 할 의대 본과 4학년 대부분은 이미 응시를 거부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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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가 의사 국시 응시 예정자인 전국 40개 의대 본과 4학년 3천15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2천903명)의 95.52%(2천773명)가 국시를 위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제출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응시 대상자 확인을 위해 각 의대는 졸업 예정자 명단을 지난달 20일까지 국시원에 제출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응시 예정자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가 필요하다.

의대협은 개인정보 제공을 하지 않을 경우 의사 국시 접수가 불가능해진다며, 정부에 반발하는 학생들의 강경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는 지금껏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의대생들이 국시를 치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 교수는 "의대생들이 거의 반년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며 "국시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치를 수가 없는 상황이다. 파행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의대생이 끝내 국시를 거부할 경우 매년 약 3천명 배출되던 신규 의사 공급이 끊긴다.

대형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하는 전공의들이 사라질 뿐 아니라, 전문의 배출도 밀릴 수밖에 없어 의료 현장의 공백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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