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정칼럼]법관의 양심(良心)은 양심(兩心)인가?

류의준 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판사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19조).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보호하는 위 양심을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한다.

한편,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하는데, 여기에서의 양심은 ‘법관에게 부여되어 있는 지위와 역할에 따른 직무수행상의 양심’을 말하고, 헌법 제103조 법관의 양심은 헌법 제19조 개인의 양심과 구별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런데 개인의 양심과 구별되는 직무수행상의 양심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선뜻 떠올리기 어렵고, 필자도 그 의미에 대해 명쾌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법관은 어디까지나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사법권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행사하는 것이고, 여기에 법관의 양심을 개인의 양심과 구별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개인의 양심을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자기 생각(마음)대로’일 텐데 원래부터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권한이 아니라 본래의 주인인 국민들로부터 사회적 합의에 따라 위임받은 사법권을 행사하면서 자기 생각대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에서 양형(量刑)은 범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것만큼 어렵고 고된 일이다. 형법이 정하는 양형의 조건에는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이 있는데, 필자의 경우 먼저 위와 같은 조건들을 두루 참작한 뒤 그동안의 판단 경험들을 되새기면서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형량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머릿속에 떠올린 형량이 어찌 보면 ‘개인의 양심’에 따른 양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과정만을 거쳐 양형을 정하는 것은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이 될 수 있어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관의 양심에 따라 행사한 것일 수 없다. 필자는 위와 같이 머릿속으로 일응 타당하다고 생각한 형량에 대해 ‘다른 유사 사건들의 선례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정한 양형기준, 주권자이자 사법권의 본래 주인인 국민들의 법 상식과 법 감정, 그리고 법관에게 주어진 법치주의 수호와 기본권 보장의 역할’ 등을 종합하는 검증 과정을 거친다. 개인적으로 보다 더 엄중한 양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범죄 유형들이 있지만, 어느 법관이 재판을 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에 큰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유사 사건의 선례와 양형기준을 통해 형평을 도모하고, 그것이 주권자인 국민들의 의사에 부합하는 것인지 고민하면서도 법치주의 및 인권 수호 또한 국민들께서 법관에게 맡긴 역할이므로 책임주의에 비추어 지나치게 무겁거나 가벼운 양형이 아닌지도 함께 숙고한다. 그 결과 처음 생각했던 양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부분과 각각 어느 정도의 괴리가 생겼는지 음미하고 그 괴리의 총합이 가장 적은 방향으로 조정한다. 그리고 조정을 거친 그 양형이 ‘형평, 국민의 법 상식과 법 감정, 책임주의’ 등 개별적인 보편 가치 및 정의 관념에 비추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범위에 있는 것은 아닌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따져보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양형 판단을 한다. 필자는 위 모든 과정들이 ‘법관의 양심’이 발현되는 모습이고, 이와 같은 심사숙고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된 그 양형은 더 이상 ‘개인의 양심’이 아닌 ‘법관의 양심’에 따른 것이라고 국민들께서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감히 가지고 있다.

법관은 언제나 자신이 행사하는 권한이 자기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임을 잊지 말고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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