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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오지 않은 민주주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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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는 숱한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번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예외는 아니다. 혹자는 지방의회의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고, 누군가는 '부패했다'고 말한다.

부패, 그리고 정치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례는 지방에도 물론 실존한다. 국가단위의 정당정치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족'과 '부패'가 지역정치의 일로 범주화되는 일, 또 '지방의회 무용론'으로 비화되는 현상에는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지방의회를 공격하는 말은 '지방'을 공격하는 말글과 꼭 닮았다. 지역 주민들이 민주주의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순간, 지역이 '무능하고,' '부패했고,' 그래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은 늘 등장한다. 주민들이 먹고, 살고, 존엄을 누리기 위한 기간시설 건설은 무용한 사업으로 격하되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은 '담합'이 된다.

한국시민은 1987년, 2016년에서 2017년, 그리고 2024년에서 2025년까지, 민주주의를 이루고, 살린 주인공이다. 그러나 평가절하당하는 지방의회를 볼 때, 나는 여전히 오지 않은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인되는 정치체제지만, 누가 시민의 자격이 있는지 분리하고, 평가하는 권력은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정작 주민들도 지방의원 선거에 누가 출마했는지 모른다,' '지자체장 거수기 노릇을 한다.' 냉소는 끝나지 않는다.

정치를 기만이나 부패, 이권다툼과 동일시하고, 시민을 이탈하게 만드는 힘이 민주주의의 적이라면,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용기는 '정치 혐오'에 맞서는 공동체다. 그러나 혐오에 맞서는 연대조차 중심부의 승인 아래 가능하다면, 한국사회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향한 험난한 여정에 있다.

험난한 여정의 한복판인 지역에서, 지방의회를 본다. 혹자는 지방의회의 필요를 '민생'을 지키는 데서 찾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지점이 있다. 자원은 서울로, 폐기물은 지방으로 향하는 한국의 지리정치적 착취 구조 속에서, 지방의회는 불평등에 영향받는 사람들을 '지역'을 경유해 묶는다. 지역이 정치공동체가 되는 과정이다. 정치과정은 평소 공동체의 경험과 역량을 반영하기에, 지역의 정치공동체는 '지역'이 형평성을 찾는 여정만큼 많은 장애물을 극복하는 중이다. 한국시민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지켜낸 민주주의,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민주주의다.

보건의료, 교육, 환경. 지방의회의 중요한 해결과제로 떠오르고도 좀처럼 지역의 시각이 문제 해결에 반영되지 않는 영역에는 공통점이 있다. 거시적인 권력구조가 의제 속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주민들의 정치적 결정권은 국가에, 능력주의에 종속된다. 지방선거에 '누가 출마했는지도' 모르게 하는 권력, 지방정치가 '행정'에 종속되게 하는 권력도 이 안에서 세를 불린다. 국가가 배제해 온 이들과 앞으로의 민주주의를, 지역에서 함께 그려야 하는 까닭이다.

오는 6월 3일 선거는 한국시민이 2024년에서 2025년 정치적 위기를 극복한 이후 첫 지방선거다. 그러나 투표소로 향하는 길에, 투표소에, 투표소 너머에 아직 오지 않은 민주주의가 있다. 냉소와 불평등을 넘어야 한다. 오지 않은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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