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해야 할 농촌의 들녘이 무거운 한숨으로 가득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와 농자재값 폭등은 농민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이 절박한 시기에 농민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 농협중앙회로부터 들려온 소식은 우리를 깊은 탄식에 빠뜨린다. 지난 21일 국회 앞 집회를 위해 지역 농협별로 버스와 인원을 강제 할당했다는 소식은, 농협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은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운영이다. 가톨릭농민회가 지향해 온 ‘생명 농업‘ 역시 인간과 자연, 그리고 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대등하고 자발적인 연대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최근 중앙회가 지역 농협에 하달한 동원 지침은 이러한 협동조합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버스 대수를 할당하고 명단을 보고하라는 방식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농민을 주인이 아닌 동원의 도구로 여기는 조직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더욱이 농민의 권익을 위해 쓰여야 할 사업비를 이와 같은 세 과시용 집회에 편법으로 집행하려 한다는 점은 도덕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농협은 특정 권력자의 사유물이 아니라, 농민의 피땀으로 세워진 ‘공동체의 자산‘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현재 논의되는 농협 개혁의 핵심은 중앙회장 직선제와 감사기구의 독립, 그리고 정보 공개의 확대다. 이는 농민의 참정권을 회복하고 농협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자율성 침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율성이 과연 현장의 농민들을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통제받지 않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그간 농협 내부 감사가 비리 의혹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는지 농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진정한 자율성은 엄격한 자기 성찰과 독립적인 감찰 시스템 위에서만 가능하다. 감사위원장까지 농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직선제는 농협을 다시 농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민주화의 첫걸음이다.
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는 ‘비조합원의 중앙회장 진출 우려‘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평생 땅을 일궈온 여성 농민들이 행정적 이유로 조합원 자격을 잃어갈 때, 소위 ‘무늬만 농민‘인 이들이 조합의 의사 결정권을 쥐고 흔드는 모순이 농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진짜 농민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논리만 횡행하는 작금의 사태를 가톨릭농민회는 묵과할 수 없다. 과도한 정보 공개가 경영을 위축시킨다는 주장 역시 협동조합의 투명성 원칙에 어긋난다. 농민 조합원에게 공개하지 못할 경영이란 결코 정당할 수 없다. 농협의 모든 사고는 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발생해 왔다. 빛이 들어와야 어둠이 사라지듯, 농협의 모든 운영이 주인인 농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될 때 농협은 비로소 건강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다.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다. 이 자명한 진리가 흔들릴 때 농협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를 과시하는 강제 동원 집회가 아니라, 벼랑 끝에 선 농민의 고통에 응답하는 낮은 자세와 뼈를 깎는 자기 성찰이다. 가톨릭농민회는 생명을 살리고 공동체를 지키는 마음으로 농협의 진정한 변화를 촉구한다. 2026년 이 봄, 농협이 권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농민과 함께 걷는 민주적인 협동조합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농협이 제 자리를 찾는 것, 그것이 곧 우리 농촌이 다시 숨 쉬고 농민의 삶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