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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의 바다편지]초곡, 마라톤, 그리고 황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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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의 바다편지

마라톤은 인생에 비유되곤 합니다. 인생은 길게 봐야 하고, 마지막에 골인하는 자가 승자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인생의 숱한 굴곡도 이 비유에 힘을 보탭니다. 저는 마라톤이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가는 공수래공수거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빤스’ 하나 입고 극한까지 갔다 오는, 날것 그대로의 서사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는 이 서사를 ‘역사적 서사’로 밀어 올린 두 명의 영웅을 배출했습니다. 지난 18일 춘천에서 열린 ‘함기용 세계제패기념 춘천호반마라톤대회’와 오는 25일 삼척에서 열리는 ‘삼척 황영조 국제마라톤대회’는 이 두 명의 영웅을 앞세웠습니다. 춘천 출신의 함기용은 19살의 나이로 1950년 4월 19일 열린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1위로 들어왔고, 삼척 출신의 황영조는 22살의 나이로 1992년 8월 9일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로 골인했습니다. 함기용은 두 달여 뒤 6.25 전쟁을 맞닥뜨렸으니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대회에서는 함기용 외에도 송길윤, 최윤칠이 각각 2, 3위를 휩쓸어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이 역사적 기록도 전쟁의 포화에 덮이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강원일보>가 창간 80주년을 맞아 함기용의 위상을 생생하게 재조명한 것은 실로 합당한 보상이었습니다.

황영조가 만들어낸 ‘역사적 서사’는 더욱 극적입니다. 그가 뛴 8월 9일이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바로 그날과 같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역사의 신이 만든 서사와 같았습니다. 더구나 일본 선수와 각축을 벌이다 1위로 골인하여 56년 만에 민족의 한을 푼 메달이라 그 서사는 더욱 빛이 났습니다.

황영조의 ‘개인적 서사’는 고향인 삼척시 근덕면 초곡해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자신을 있게 한 것이 바로 이곳의 파도와 가난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저는 그가 ‘몬주익의 영웅’으로 등극하기 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길게 이어진 하얀 백사장과 검푸른 파도, 그리고 아름다운 해송길이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가 금메달을 딴 이후 자기 서사의 출발을 이곳의 파도와 가난으로 꼽았을 때 저는 즉시 그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아름다웠지만, 가난이 넘실대던 초곡해변의 풍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초곡해변을 다시 찾았습니다. ‘황영조기념공원’에 있는 시비에는 도종환 시인의 시 「그는 파도처럼 달렸다」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인도 이 시에서 “물질하는 어머니의 궁핍한 바다” “죽음과도 같은 몬주익 언덕을 넘어올 때/ 초곡리 파도가 그의 등을 떠밀고 있는 걸 알았다”라는 구절을 통해 황영조를 지탱해온 초곡해변의 파도와 가난에 주목했습니다.

한국 마라톤은 황영조와 이봉주 이래 오랫동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영조는 근래에 자주 ‘헝그리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한다면 꼰대 취급을 하겠지만, 그가 이 말을 하면 왠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시에도 나오듯 “그가 온몸을 던져 결승선을 향해 달려갈 때/ 그의 몸에는 마지막 한 방울의/ 동해바다가 남아 있었다”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황영조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 인생의 마라톤은 항상 ‘불구덩이’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고통을 감내했기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빨리 은퇴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마라톤을 ‘정진’에 비유했습니다. 한발 한발 나를 다스리고, 좀 더 강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말은 마치 깊은 산 속 수도승의 법문처럼 들렸습니다. 이처럼 황영조의 말은 어눌해 보이지만, 때로 살아 꿈틀대는 ‘활구(活句)’가 튀어나올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빤스 하나 입고 불구덩이의 극한까지 가본, 날것 그대로를 체험한 자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의 원천인 초곡해변을 풀코스 반환점으로 삼은 ‘삼척 황영조 국제마라톤대회’가 한국 마라톤의 또 다른 서사를 써나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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