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연합) 한꺼번에 5천명이 죽는 지진이나 전쟁이 매일 일어난다면 어떨까?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재앙이 지금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루 사망자 5천500명, 하루 감염자 1만1천명, 일부지역 신생아 감염률 50%, 평균 수명 25-30년 단축...
세계보건기구(WTO)와 유엔에이즈계획(UNAIDS) 등이 내놓은 아프리카의 에이즈통계들은 가공스럽다.
지난해 아프리카에서만 200만명 이상이 에이즈로 죽었고 이제까지는 총 1천200만명이 사망했다. 노르웨이의 전체 성인 인구와 같은 숫자의 아프리카인들이 해마다죽어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자 수는 2천200만명.
하지만 지금도 1분에 4명, 하루에 1만1천명, 1년에 400만명이 에이즈에 걸리고있다. 일부 지역의 경우 새로 태어나는 아이 둘 중 하나가 HIV 보균자다.
에이즈는 아프리카에 800만명의 고아를 남겼다. 아프리카인들의 평균 수명은 70세에서 40-45세로 줄었고 말라위에서는 교사의 3분의 1이 에이즈에 걸렸다.
부실한 에이즈 검사와 환자 관리 탓에 2천만명이 넘는 HIV보균자중 에이즈 감염사실을 아는 환자는 20만명도 안된다는 통계는 또다른 충격이다.
하지만 이런 가공할만한 통계들 마저 실제보다는 훨씬 축소됐다는 지적이 많다.
에이즈 관련 통계가 없는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엔 지난 3년간의 에이즈 통계가 없다.
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에티오피아는 에이즈 통계가 아예 없다. 이런 나라들의 정확한 에이즈 통계가 추가되면 아프리카의 에이즈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훨씬늘어날 것이란 지적이 많다.
▲아프리카 에이즈의 사회 경제적 영향
그렇잖아도 가난과 질병에 시달려온 아프리카는 에이즈로 존립자체를 위협받는지경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취약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산업은 에이즈 때문에 마비 위기를 맞고 있다. 근로자들이 날마다 병들거나 죽어나가 생산성이 급락하고 아예 문을 닫는 공장들이 늘고 있다. 생산활동이 왕성한 젊은층이 몰사하고 중산층이 몰락하는 현상도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교사들이 날마다 죽어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학교가 부지기수고 800만명에달하는 에이즈 고아들은 가난과 질병에 방치된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수술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대부분의 혈액이 HIV에 감염돼 있어 응급환자들만 수입 혈액을 이용해 겨우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남아공에서는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일부 백인과 부유층 청소년을 수혈집단으로 육성해 25세가 되기전에 25번 헌혈할 것을 권유하는 '클럽25'운동이 펼쳐지고 있을 정도다.
▲요원한 해결책
이처럼 심각한 아프리카 에이즈에 대한 대책은 성생활 개선을 통한 신규 감염방지와 예방.치료약 개발의 두 갈래 방향으로 추진돼왔지만 두가지 해결방안 모두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생활 개선을 통한 에이즈 예방은 아프리카의 낮은 교육수준과 잘못된 관습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네갈과 우간다 두 나라에서만 성과가 나타난 정도이다.
에이즈 예방약 개발도 선진국 회사들이 맹렬히 추진하고 있지만 이렇다할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에이즈 치료약도 아프리카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중간층 소득이 월 500달러에불과한 상황에서 한 달에 1천달러나 드는 약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에이즈가 임산부에서 태아에게 전염되는 위험을 50% 정도 줄일 수있는 네비러파인이라는 값싼 약이 개발돼 희망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지난 9월 잠비아의 루사카에서 5천여명의 에이즈 관련 전문가, 사회활동가, 정부 관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제에이즈회의에는 아프리카국가의 정상이라곤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 개최국인 잠비아 대통령 마저도 다른 회의 참석을이유로 불참했다.
같은달 리비아에서 열린 아프리카 단결기구(OAU)회의에 40개국이 넘는 정상이참석해 다소 공허해 보이는 아프리카 합중국 창설문제를 논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들은 이처럼 에이즈 문제를 부끄러워하며 아예 언급조차하려하지 않는다는게 에이즈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콘돔 구입 예산조차 제대로 배당하지 않는 나라들이 무기 구입에는 엄청난 돈을쏟아붓고 있는게 아프리카의 현실이기도 하다.
60만명 남짓한 코소보 알바니아계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유고전쟁을 수행했던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도 에이즈로 죽어가는 수백만명의 아프리카의 인권문제는 거의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에이즈 재앙이 휩쓸고 있는 아프리카6개국을 순방했다. 서방 언론들이 '사파리 투어'라고 명명한 이 순방에서 올브라이트는 에이즈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미국은 심지어 미국회사가 개발한 에이즈 치료약의 모방제품을 남아공회사가 제조해 싼 값에 팔고 있다며 이의를 제기해 통상마찰을 빚었을 정도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재앙이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 에이즈문제는 당사국과 선진국들의 무관심 속에 더욱 큰 재앙으로 번져가고 있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