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본 「왕오천축국전」은 바이샬리로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여러 학자들에 의해 비정(比定)되고 있다.
여기 첫 구절을 옮겨보면 『삼보(三寶)를… 맨발에 몸에는 옷을 입지 않으며 외도(外道)라 옷을 입지 않는다. <약19자 缺> 음식을 보자마자 곧 먹는다 .재계(齋戒)도 하지 않는다. 땅은 모두 평평하고… 노비가 없다. 사람을 팔면 살인하는 죄와 다르지 않다. <약18자 缺>』
위에서는 구체적으로 바이샬리의 지명은 보이지 않지만 뒤에서 혜초는 「비야리성(扉倻離城)」이라고 다시 적고 있다.
비하르주의 수도 파트나(Patna)에서 넓은 갠지스를 건너 바이샬리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크고 작은 버스를 몇 번씩이나 바꿔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째 달려도 산을 볼 수 없는 드넓은 황토색의 대륙에는 끝없이 논밭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간간이 궁핍함이 배어 나오는 조그만 촌락과 늪지가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직선으로 뻗어나간 그 길에는 오늘도 신의 대접을 받는 성우(聖牛)무리들이 차를 가끔 가로막기도 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수 천년 전부터 그래왔을 인도의 전형적인 농촌의 정경이었다.
오늘 날 속칭 불교의 「4대성지」니 「8대성지」니 하는 곳의 대부분은 현 인도의 행정구역상으로 비하르(Bihar)주에 속해 있다. 이 말은 원래 사찰을 의미하는 「비하라(Vihara)」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단어가 말해주듯이 불교나 자인교가 융성했던 당시에 이 지방은 그처럼 사찰이 즐비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지금은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로 전락했지만 옛날의 비하르는 번영을 구가했던 인도의 심장이었다. 역대 마가다·마우리야·굽타같은 융성했던 왕국들의 연이은 도읍지였기에 이 지방은 자연스럽게 전 인도대륙의 정치·경제·문화·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북쪽에 위치한 바이샬리는 자인교의 고향으로 또한 부다의 활동무대로도 유명하지만 그 이전에는 바지안(Vajian)연합이라는 인류 최초의 공화국이 있었던 곳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B.C 6세기경 랏차비종족의 8개 지역연합으로 구성되어 의회제도에 의한 공화정치를 폈던 번영기의 바이샬리의 모습은 『경비를 위한 성벽이 3겹으로 쳐져 있는 성안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여러 층으로 올라간 건물들이 줄을 이은 시가지 곳곳에는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찬 공원들이 자리하고 있어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바이샬리는 자인교의 교주가 태어나고 소년시절을 보낸 자인교의 중요한 성지이다. 그래서 자인교에서는 바이샬리가 작은 소읍이지만 교조 탄생지인 쿤달뿌르에 대학과 사원을 세워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불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인교는 철저한 불살생(不殺生)의 계율로 인하여 생산직보다는 상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중산층에 뿌리를 내려서 지금도 힌두사회에서 힌두교 다음의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그것은 중세시대에도 마찬가지였던지 혜초와 법현 그리고 현장의 기록에서 「맨발의 나체 외도(外道)」라는 구절로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인도의 위대한 영혼」이라고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의 종교로 알려진 일명 자이나교라고도 불리는, 이 무소유를 지향하는 나체의 종교는 불교와 거의 동시대에 출현하였다. 인도대륙의 원주민이었던 드라비다족을 몰아내고 새 주인이 된 인도-아리안족은 인더스문명을 이어받아 브라흐만교의 사제들의 주도하에 찬란한 베다문화를 이룩하였지만 교단이 비대해짐에 따라 생기는 부패와 피비린내 나는 과도한 「희생제(犧牲祭)」에 대한 반발로 B.C 5~6세기경에는 많은 신진 사상가가 출현하여 반(反)부라흐만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 상황은 마치 중국의 춘추시대를 방불케하는 것이었는데 그 중에 불교와 자이니즘도 끼여 있었다.
고타마 부다와 동시대의 인물로 전해지는 니간타 나타푸타(Niganta Nataputa)는 12년간의 나체수행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성인의 반열에 들었다. 그후 그의 가르침은 자이나교로 발전하여 지금껏 인도사회에 한 갈래를 이루고 있다. 자이니즘에서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인을 「디르탄카라(Dirthankara)」라고 하는데 교조 니간타는 제24대에 해당된다. 초대 「디르탄카라」인 리샤바나트는 우주의 중심인 아스타파타(Astapata)에서 수행을 한 후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불교에 있어서도 바이샬리는 역시 의미가 깊은 곳이다. 고타마 부다가 제자들과 함께 머물렀던 암라수(菴羅樹)동산과 불경의 「제2차결집지(結集地)」와 「원숭이의 공양전설」 그리고 아쇼카왕의 돌기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다의 마지막 하안거의 장소로도, 그리고 유명한 경전인 「유마경(維摩經)」의 설해진 무대로도 역시 알려진 곳이다.
현장법사는 유마거사의 집터와 탑을 돌아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유마가 실존인물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비말라키르티(Virmalakirti)란 이름의 이 거사는 바이샬리에 살았던 부유한 장자로서 당대의 유명한 학자이면서 신통력까지 갖춘 대단한 인물로 전해져 부다의 기라성 같은 제자들도 감히 상대할 수 없어 기피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유마가 병이 들었다는 소문이 나자 부다가 병문안가기를 꺼리는 제자 중에서 문수사리를 대표로 보내 문병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유마경」은 그 서술이 희곡 형태로 구성되었고 또한 다른 경전과 달리 재가불자(在家佛者)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이채로움을 띠는 경전이다.
이 점은 불교교단이 출가자 중심이 아닌 「사부대중(四部大衆)」, 즉 비구·비구니·우바세·우바니로 구성되는 모델에 부합되는 좋은 케이스로서 그것을 보살행(菩薩行)이라는 실천적 덕목을 강조하는 우리 대승불교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다시 말하자면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한 종교인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추구가 아니라 누구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도 가능한 불교적 이상향의 실천에 그 의미가 있다. 조금 전문용어를 쓴다면, 일상생활 속에서도 「유희삼매(遊●三昧)」에 들어 「불이문(不二門)」 화두를 돌파하여 서로 대립되는 관계가 아닌, 대자유인 공(空)의 세계, 즉 「우나 사루스」에 들어가는 실천적 방법을 제시한 경전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여래께서 바이샬리의 암라수동산에 계실 때 많은 비구와 보살이 함께 하였다』라고 시작되는 이 「유마경」 진수는 몇 마디 구절로 요략되고 있다.
우선 「불이법문(不二法門)」이 유명하고 다음 구절도 의미심장하다. 『나의 병은 중생이 아프기에 생긴 병입니다. 내 병은 중생이 고뇌에서 벗어나는 날 나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야 할 말이라 하겠다. 타인을 위해 대신 아플 수 있는 마음은 정말 어떤 색깔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