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정사 '향실'엔 부다 체취 물씬
「불경의 최대산실, 기원정사」
해동의 나그네는 혜초의 발길이 머물렀을 「8대성지」를 이미 거의 섭렵하였기에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부다의 탄생지인 네팔 땅 룸비니동산으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그 길목에 유명한 기원정사가 있었음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너무나 조용한 시골로 변해버린 스라바스티는 고타마 부다의 재세시에는 고대16국 중에서도 가장 강했던 코살라국의 수도로서 북인도에서 가장 번창하던 곳이었다. 옛 성터는 현재의 마헤트(Maheth)로 숲으로 변해 버렸고 남쪽 교외에 있었다는 「기원정사(祇園精舍)」는 현재 사헤트(Saheth)란 지명으로 인도정부에 의해 유적공원으로 잘 관리되고 있었다.
우리의 혜초도 역시 이곳을 들러 -「중천축에 네 개의 대탑이 있는데 항하(恒河)의 북쪽에 세 개가 있다. 첫째 탑은 사위국의 급고원(給孤園)에 있으니 거기에는 절도 있고 승려도 있음을 보았다」-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기원정사는 고타마 부다가 「위 없는 깨달음」을 얻은 후 그의 전법인생 45년의 절반 가까이나 머물렀었기에 어느 곳보다도 그의 체취가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현지인들은 두 사람의 이름을 합쳐 「제타바나 아나타핀디카라마(Jetavana A)」라고 부르고 있지만 한역경전에는 일명 「제타림 급고독원」이라고 명명된 유래를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다.
사업차 라즈기르를 방문한 코살라출신의 부호 아나카핀디카 장자는 그곳에서 우연히 부다에게 반하여 고향으로 모셔갈 계획을 세웠는데 교단에서 내세운 조건이 여래와 많은 제자들이 머물며 수행할, 시내에서 가까우면서도 조용한 정사였다고 한다. 이에 이런 조건에 알맞은 제타태자의 숲을 사고자 여러 차례 제의하였으나 완강히 거절하던 태자가 포기를 종용할 작정으로 농담 삼아 땅을 덮을 만큼의 금을 요구하자 뜻밖에도 장자가 이를 응했기에 태자도 감동하여 무상보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부다의 지지자들이었던 국왕들에 의해 중수된 웅장했다던 기원정사는 현장보다 한 세기 전에 법현(法顯)이 왔을 때 이미 화재로 인한 폐허로 변한 채 목격되었다. 법현은 이를-「기원정사 안에 있는 7층 건물은 많은 참배객들이 방문하던 곳으로 비단으로 만든 깃발과 덮개들이 사방에 걸리고 등불이 밤낮으로 밝혀져 있었는데 어느 날 쥐가 등불을 건드려 불이 붙어 모두 소실되어 버렸다. 그러나 며칠 뒤 당연히 타버렸을 것으로 알았던 백단향으로 만든 불상만이 동쪽에서 발견되어 사람들이 찬탄하면서 불탄 그 자리에 2층으로 사원을 지어 다시 모셨다고 한다.」-라고 적고 있다.
숲속에 자리잡은 넓은 정사 안에는 「향실(香室)」, 즉 간다쿠티(Gandhakuti)라고 하는 건물터가 있는데 바로 부다가 거주했다고 전하는 곳이다. 「향실」이란 이름은 부다를 흠모하여 찾아온 사람들이 가져온 꽃과 향이 언제나 가득한 집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후에 이런 연유로 부다의 거처를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한다. 기록에는 부다가 열반에 든 뒤 평생 여래를 측근에서 모셨던 아난다가 향실로 돌아와 슬픔에 잠겨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인간사의 무상함을 이야기하며 위로하여 돌려보내고 혼자 방에 남아 침구도 정리하고 부다의 손때가 묻어있는 집기들을 닦고 털며 청소를 하는 등 마치 여래의 생존시처럼 하였다는 모습도 전하고 있어 스승을 잃고 허전해하는 제자의 모습에 후인들로 하여금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감회에 빠지게 하고 있다.
「고타마 부다의 스캔들」의 현장들
현대의 선정적인 주간지에 특종으로 오를만한 스캔들이 부다 주위에도 자주 생겼다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설마하면서 의아해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 종교 집단과 그 교주의 성스러움에 감히 티를 묻힐 수 있느냐 하는 편집적 원리주의를 떠나서 그 의미를 곱씹어 보아야 할 일종의 화두이기에, 그리고 기록과 그 현장이라고 전해지는 곳도 여러 곳 남아 있기에,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진리란 시각」을 허상을 한번 다시 생각해보자. 물론 이런 예민한 테마를 거론하는 뜻은 흠집을 내는데 있다기보다 어떤 평범한 인간이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데 있다.
자 그럼 「대당서역기」를 비롯한 몇몇 기록 속으로 들어가 당시 요란했던 「부다의 스캔들」을 한번 다시 들춰내 보자. 먼저 교단의 「일종의 파워게임」이었던 「데바다타와 코칼리카의 지옥행 조」를 간단히 살펴보고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어떤 불교성지를 가다보면 데바다타가 부다를 해치려고 하다가 지옥에 떨어진 곳이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 데바다타는 고타마 부다와는 사촌지간의 혈족이었으며 또한 아난존자의 친형으로서 역시 출가하여 한 일가를 이룬 수행자였다고 하는데 경전에는 그는 끊임없이 부다와 교단을 음해하는 악마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면 정말 그랬을까? 그는 지옥에 떨어져 버릴 만큼 악마적인 세력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볼 수 있다. 그러나 기록은 데바다타의 교파는 불멸후 천년 뒤인 7세기에도 아직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인도 땅에 당당히 존재하고 있었고 또한 유락도 먹지 않는 초기교단의 원칙적인 계율을 지키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보면 데바다타의 교파는 계율면에서 중용적 입장에 선 불교보다는 보수적인 교단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생매장 건」은 무언가 다른 의도가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든다. 불교는 세계 종교사에서 배타적이지 않는 유일한 종교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교단의 교주의 자리를 넘보는 경쟁자에게만은 그런 관용을 베풀 수는 없었기에 생매장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이런 사건은 줄줄이 뒤를 잇는다. 바로 「고타마 부다의 스캔들」을 말하는데 역시 기원정사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다. -깊은 구멍이 있다. 친챠여인이 여래를 비방하다가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 곳이다. (중략)그녀는 멀리서 세존의 모습을 보고 대중이 너무도 공경을 하고 있으므로, 「오늘이야말로 고타마에게 치욕을 가하여 나의 스승이 홀로 명성을 독차지하게 해야겠다」하고 다짐하고 나서 옷 속에 나무바가지를 넣고 기원정사로 나가 대중들에게 큰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은 나와 사통했소. 뱃속의 아기는 바로 그의 자식이요.』하고 외쳤다. 마침 쥐가 바가지의 실을 갉아 자르자 실이 끊어졌기에 모든 사람들은 사건의 전말을 알고 기뻐했다. 한 사람이 일어나 바가지를 들고 그 여자에게 보이면서, 『이것이 그대의 자식인가?』하고 조롱하자 그 순간 땅이 갈라지면서 그 여자는 산채로 지옥으로 떨어져 갖은 고통을 받았다.- 또 다른 스캔들도 있다.
-가람 뒤쪽에 외도가 음녀를 죽이고 부처님을 비방한 곳이 있다. (중략) 이때 외도들은 함께 상의하여 속임수를 써서라도 부처님을 비방하기로 하고 음녀를 매수한 다음 매일 부처님 설법을 듣게 하여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하고 나서는 은밀하게 이 여자를 죽여 그 시체를 기원정사 옆 나무 밑에 묻고 왕에게 고소했다. 왕이 수색을 명해 시체를 발견했다. 그러자 외도들은 소리 높이 『고타마는 찬양 받는 사문인데 뒤로는 이와 같이 여자와 정을 통한 후 입을 닫으려 죽였다』고 외쳐댔다. 그러자 천인들이 공중에서 외도의 소리에 이어, 『외도의 악인들만이 이 같은 비방을 하는 것이다.』고 외쳤고 곧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물론 사실 여부를 더 이상 확인할 방법이야 없다. 그렇지만 그녀들의 생매장 역시 후대에 교단의 수호차원의 방어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타마 여래는 이런 질시와 시기를 딛고 역사에 밝은 빛을 남겼다. 그랬으면 된 것이 아니겠는가?

